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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북한 핵문제와 해결방안
작성자 최미란 작성일2011-08-11 오전 9:3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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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핵문제와  해결방안 
                           최미란(한국통일안보학회 상임이사 ,사회복지학박사)

서론
 
한반도는 1993년 핵위기시 1994년 10월 제네바에서 북한과 미국은 소위 제네바 핵 합의에 서명함으로서 전쟁 직전의 위기까지 몰고 갔던 북한 핵문제를 해결했었다. 그런데 꼭 8년이 지난 2002년 10월 북한은 다시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동년 10월 3일 켈리 미국 국무차관이 평양을 방문했을 당시 그는 북한측에게 핵을 개발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력히 항의했고, 북한은 우선 핵 개발을 하고 있지 않다며 화를 내며 부인했다. 이에 켈리 차관은 북한이 거부하기 어려운 증거를 제시함으로서, 다음 날인 4일 강석주 북한 외교부 부부장은 -우라늄 농축-을 통한 방식으로 핵 개발을 하고 있음을 시인했다.
북한의 핵문제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어 부시 행정부 출범 이래 장기간 교착상태를 보여온 북-미관계가 변화의 전기를 맞고 있다. 북핵 문제를 둘러싸고 북한과 미국이 협상의 장에서 마주서게 되었다고는 하나 북한의 체제보장, 경제지원, NPT레짐의 보존, 미국의 동맹전략을 포함한 역내 안보역학 관계,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등 북한 핵문제가 내포한 여러가지 복잡한 현안의 복잡성에 비추어 본다면 단기간의 해결을 예상할 수는 없으며, 그 과정 또한 그리 순탄하다고 예단할 수도 없다. 다만, 북핵 문제해결을 위한 지난 1993년 4월의 베이징 3자회담의 성사가 갖는 하나의 긍정적인 신호는 북한과 미국이 협상을 통해서 북핵 문제를 풀어나가는데 있어 일정한 공감대를 형성하였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태의 전개를 둘러싸고, 대부분의 논자들은 ‘바그다드 효과’를 언급하면서 이라크 전쟁에서 보여진 미군의 ‘충격과 공포작전’에 대한 북한 지도부의 충격적 인식을 북-미 양자회담만을 주장해온 북한이 대미협상의 테이블에 나오게 된 배경으로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은 미국의 일방적 승리를 점칠 수 없었던 이라크 전쟁 발발 직후인 1993년 3월말 핵 문제를 더 이상 악화시키지 않고 미국의 다자간 협상틀을 수용할 수 있으니 명분을 주었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미국측에 전달했다. 1993년의 제1차 핵 위기시에도 북한은 3월 NPT탈퇴를 선언한 후 NPT 탈퇴발효 최종 마감시한인 6월 12일을 한달 앞둔 시점인 5월초에 미국쪽에 먼저 조기회담 개최 등 협상의사를 전달했었다. 그 후 지루한 협상 끝에 「제네바합의」가 나왔다. 이렇게 볼 때, 금번의 북한의 선제적인 대미 유화태도는 1993년의 핵 위기시 보여졌던 것과 마찬가지로 북한 지도부가 미국과의 극단적인 대결국면을 회피하는 다시말해 종국적으로는 타협적 태도를 취할 것임을 시사했던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두 번의 북핵 위기와 관련된 결정적 시점에서의 북한의 이같은 타협적 태도는 북한의 안보전략차원의 전략적 선택이란 차원에서 설명되어질 필요가 있는 것이다. 때문에 다자회담 수용과 관련한 북한의 대미 행태는 ‘바그다드 효과’ 에서 근원한 것이라기 보다는 1993년의 핵위기에서 보여진 것처럼 냉전종식 이후의 북한의 안보전략의 변화와 연관해서 설명되어져야한다. 분명 이라크 전쟁은 북한 지도부에게 적쟎은 충격을 준 것임에는 틀림없다. 유엔 안보리가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가운데 미국의 일방적인 군사작전에 의한 후세인 정권의 붕괴는 북한 스스로 언급하고 있듯이, 북한 지도부로 하여금 미국과의 “불가침 조약을 체결한다 해도 전쟁을 막을 수 없다”는 절박한 대미협상 필요성을 한층 강하게 인식하게끔 하였다.  
한편, 북핵 문제와 관련해서 상기해야 될 것은 국제안보 이슈로서의 북한 핵문제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1980년대 중반이래 존속해온 북핵 문제는 냉전의 종식과 더불어 국제안보의 핵심 이슈로 자리잡아왔으며, 북한은 그 동안 북핵 문제를 대미협상 차원에서 집요하게 활용해왔다. 이러한 사실은 다음과 같은 두가지 점을 시사하고 있다. 첫째, 북한은 북핵 문제를 체제보장과 관련한 안보전략 차원에서 접근해왔다는 것인데 곧, 북핵 문제는 북한 지도부에게 사활적인 이슈였는 바 대미협상의 논리속에서 제기되어왔다는 점이다. 둘째, 냉전종식 이후 북한의 안보전략은 사실상 북한의 생존을 위한 대미접근전략에 다름 아니라고 하는 점이다. 북한 지도부는 대미관계 정상화야말로 북한의 체제를 보존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다. 최근에도 북한은 북핵 문제와 관련해 “오늘의 사태는 자위를 위한 강력한 전쟁 억제력을 갖추지 않으면 안되게 만들고 있다”는 등 대외 위협적 언사를 내뱉고는 있지만, 실제로는 “미국이 대조선 적대시 정책을 포기하고 우리의 우려를 해소한다면 우리도 핵문제에서 미국이 우려하는 문제를 해소할 용의가 있다”며 대미타협적 태도를 보이고 있어 북미관계 개선을 통한 체제안전의 확보가 여전히 북한 지도부의 제1의 안보 관심사임을 내비치고 있는 상황이다.  
제2의 핵위기가 시작된지 10개월만에 1993년 8월27일 6자회담이라는 형식의 대화가 가능하게 되어 핵문제에 대한 진일보된 현상으로 받아 들일 수 있다. 물론 미국과 북한이 결코 대화하지 않겠다고 말한 적은 없다. 대화를 통한 해결방안을 주장하면서도 북한은 미국과의 1:1대화를 고집했고, 미국은 다자회담을 주장했다. 북한의 1:1 주장은 국제정세의 명확한 판단에 근거하여 북한의 핵문제를 제기하고, 해결할 수 잇는 나라가 미국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의 다자회담 주장은 북한의 핵문제를 국제 핵 확산 방지 및 반테러 전쟁이라는 세계전략의 일환이라고 보기 때문이며, 핵문제에 대하여 북한이 계속적으로 거짓말과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자회담 구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6자회담에서도 참가국들은 모두 북핵 해법에 대해 원론적인 희망사항만 피력했을 뿐 각론은 서로 의견을 달리했다. 물론 첫 번째 만남이라는 그 자체의 의미가 있고, 미북 양측이 공식적인 접촉을 가졌다는 것도 의의가 있다. 그러나 미국과 북한은 여전히 서로 선핵포기와 선 적대정책 전환을 요구하는데 한치의 양보도 없다. 결론적으로 모든 것이 미국 하기 나름이 아닌 북한의 태도 변화 여부에 달려 있다. 미국이 이번 회담을 미흡하지만 그런대로 성과가 있다고 판단하는 것은 바로 북한이 변화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6자회담의 무용론이 흘러 나오긴 하지만 어쨌든 회담은 지속되어야 한다. 국제사회가 대북제제란 위협을 가해서라도 북핵 공갈의 위험을 제거해야 한다.
 
북한의 핵개발 이유
 
먼저 북한이 핵을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있다는 사실은 미국의 적대 정책에 대항하기 위해 핵 개발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미국은 북한의 새로운 핵 개발이 이미 1998년부터 시작 된 것이라 보고 있다. 북한과 파키스탄의 우라늄 관련 거래도 1999년경에 시작 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1998년, 1999년은 어떤 측면에서 보아도 미국과 북한간의 관계가 상당히 양호하던 시절이었다. 클린턴 행정부의 마지막 무렵, 미국 국무장관이 북한을 방문했고 2000년 말에는 클린턴 대통령이 북한 방문을 계획할 정도였다. 북한이 말하듯 대북 적대 정책을 구사하는 부시 대통령이 취임한 것은 2001년 1월이며 부시 행정부의 한반도 정책이 구체화 된 것이 2001년 6월이며, 북한이 본질적으로 의심을 받게된 것은 2001년 9월 11일 테러 이후이니 북한이 말하는 핵 개발 원인으로서의 미국의 적대정책은 핵 개발 계획의 직접 원인이 되기에는 시간적으로 문제가 있어 보인다.
둘째, 북한이 핵 개발을 지속적으로 추구하는 이유는 북한 체제의 속성에서 유래한다고 보인다. 특히 강성대국이라는 북한의 목표는 군사의 강국, 사상의 강국을 건설하는 것이며 이는 개혁개방을 통한 경제발전 보다 훨씬 앞서고 중요한 목표라고 간주되는 것이다. 설득을 통해 북한의 핵 개발을 저지하기 어려운 본질적 이유가 바로 북한 체제의 궁극적 목표에 내재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북한의 어려운 경제사정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난해도 국방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이 북한의 딜렘마이다. 현대식 무기를 구입할 경제적 능력이 없는 북한은 비교적 값싸고(개발비용 2억$) 파괴력있는 핵무기의 매력을 알고 대남 군사적 우위를 지속하려 하는 것이다.
넷째, 북한의 국내 정치적 이유로부터 연유되었다. 북한의 정책구호인 강성대국 건설에 걸 맞는 것이며, 군사위주의 정책이며, 북한은 이 핵무기를 이용하여 국제협상의 도구로서의 역할을 잘 하여, 정치, 경제 그리고 군사적 이익을 추구해오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1993년과 2002년 핵 위기의 차이점
 
제1차(1993.3.12) 핵 위기와 제2차(2002.10.17) 핵 위기는 그 본질이 다르다는 사실에 유념해야 한다. 우선 국제 정치적 상황이 판이하다. 1994년 10월 미국과 북한 사이에 이루어진 제네바 핵 협정은 1980년대 말엽 공산주의 국가들이 줄줄이 붕괴되고 결국 소련마저 붕괴된 1990년대 초반의 국제정치상황에 대한 미국과 북한의 행동과 인식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북한은 국제공산주의의 완전한 붕괴와 중국 체제의 변질까지 목격하면서 체제의 안전을 유지해 줄 수 있는 궁극적 수단으로 핵 폭탄 개발을 서둘렀던 것이다. 북한은 이 무렵 오직 미국만이 북한의 운명을 보장할 수 있는 국가라고 -정확히- 판단하고 미국과의 외교적 타결을 통해 북한의 생존을 도모하려 했으며 이 과정에서 핵은 하나의 좋은 전략적 카드로서 사용되었던 것이다.
 
미국은 1994년 당시 북한이 만약 1-2개의 핵 폭탄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앞으로 더 이상 핵을 개발하지 않을 것을 약속한다면 이는 미국에 그다지 큰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미국은 북한이 핵을 여러 발 만들어서 중동의 국가로 수출하는 것을 더 큰 문제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제네바 핵 합의는 바로 이 같은 미국의 우려를 해소한 것이었고 북한은 미국으로부터 임시적이나마 체제를 보장받은 셈이었다.
 
냉전이후 지속적인 경제 발전을 통해 사상 초유의 유일 초강대국이 된 미국은 2001년 9월 11일 당한 테러의 충격속에 국가안보전략을 완전히 바꾸어 버렸다. 미국의 국력이 사상 최강의 상태에 이른 바로 그 시점에서 미국 본토의 핵심이 공격당하고, 민간인 수 천 명이 죽을 수 있는 놀라운 현실은 미국으로 하여금 세계 정치를 완전히 다른 시각에서 보게 만든 것이다.
 
테러리스트들이 만약 핵무기 등 대량파괴무기를 보유하게 된다면 그 경우 테러는 9.11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엄청난 재앙이 될 것이 확실해 졌다. 테러리스트들이 스스로 핵무기를 개발할 실력은 없다. 결국 테러리스트들을 핵무장 시킬 가능성이 있는 나라들의 대량 파괴무기를 사전에 제거하지 않으면 않는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9.11 테러 사건은 이라크, 이란, 북한의 핵 폭탄이 미국의 대도시 어디에도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운반 가능하다는 공포심을 확산 시켰다. 미국의 테러전쟁 제 2 단계가 소수의 국가들을 상대로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는 것이다.
그 결과 94년에는 `동결`수준에서 끝날 수 있었던 미국의 북한 핵문제 해결 방법이 이번에는 북한의 핵을 `제거`하는 것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으로 북한이 핵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보다 북한이 테러를 지원하는 체제라는 사실이 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북한의 미사일 수출 선박을 나포, 억류 했다가 풀어주었다. 대 테러전쟁에서 미국을 지원하는 예멘이 미사일을 보유하는 것은 눈감아 줄 수 있다는 미국의 입장을 잘 나타내는 사건이었다. 미국의 외교정책 원칙상 어느 나라가 대량 파괴 무기를 보유하고 있느냐의 문제보다 앞서는 기준이 어느 나라가 테러를 지원하는 나라야 아니냐에 있는 것이다. 북한은 핵을 통해 체제를 보장받으려 하나 미국은 북한의 현 체제를 테러를 지원하는 체제라고 간주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難點인 것이다.
 
핵문제에 대한 미국과 북한의 전략
북한은 핵 개발 사실을 시인한 이후 몇 가지를 핵문제 해결의 조건으로 제시했다. 우선 북한은 미국과 불가침 조약을 체결 할 경우 핵문제를 해결 할 수 있다고 제의했다. 미국은 이를 거부하고 대신 부시 대통령의 대북 불가침에 대한 언급으로 대답했다. 북한이 미국과 불가침 조약을 맺자는 것은 궁극적으로 한미 동맹관계의 파기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미국이 남한과는 방위조약을, 북한과는 불가침조약을 동시에 맺을 수 없을 것이다. 만약 미국이 북한과 불가침조약을 맺은 후에도 한미동맹, 주한 미군을 유지할 경우 북한은 미국과의 약속을 믿을 수 없을 것이며 이를 실천으로 보여 달라고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2002년 12월 9일 북한의 미사일 운반선이 억류되었다가 풀려난 직후, 북한은 핵 동결 파기 선언을 감행했다. 북한의 핵 시설을 감시하기 위해 IAEA가 설치한 카메라를 제거하라고 요구하고 핵 연료봉 봉인을 해체 해 달라고 IAEA에 요구했다. 북한이 최근 행하는 일련의 행동들이 비 전략적인 것 같은 모습을 보였는데 이번 경우도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북한은 고이즈미 일본 수상 방북시 일본인들의 납북을 승인했고, 켈리 특사 방북시에는 핵 개발 사실을 시인했고, 미국이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미사일을 선적한 배를 계속 항해시키다 나포 당하기도 했다. 이 모든 사건들이 북한에게 불리한 국제 여론 형성에 기여했다. 북한이 했을지도 모른다며 심증적인 의혹을 제기한 세계 여론에 북한 스스로 그렇다고 증명을 해 준 격이다.
 
북한이 IAEA 가 설치한 감시용 카메라를 제거한다던가 핵 시설의 봉합을 뜯어낼 경우 그것은 곧바로 UN 안전보장이사회로 이관되는 국제문제가 될 것이다. 미국보고 오만한 일방주의라 비난했지만 이번 일은 자동적으로 유엔과 마찰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게다가 북한은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핵시설을 즉각 재 가동 한다고 했다. 94년 동결된 핵 시설이 발전을 위한 시설이 아니라는 것이 미국 및 IAEA의 판단이다.
 
이러한 북한의 핵문제에 관련된 일련의 행동에 미국은 일면 느긋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 또한 이번 사건의 특이한 일이다. 이라크공격전까지 미국은 이라크에 대해서는 무력 사용을 강조하는 반면 북한에 대해서는 평화적인 해결을 강조하고 있다. 미국은 북한 문제를 외교적으로 풀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미국은 북한의 어떤 강수에 대해서도 `정치적인 협상은 없다`라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많은 분들이 미국은 북한과 대화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미국이 거부하는 것은 북한의 핵을 거래 (bargain) 혹은 협상(negotiation) 의 대상으로 삼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지 대화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부시 행정부는 클린턴 행정부가 북한 핵과 거래를 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상황이 초래되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과거 어떤 시대보다 러시아, 중국, 일본과 가장 확실한 공조를 이룰 수 있는 국제정치 구조를 만들었다고 보여 진다.
 
미국이 현재 택하고 있는 전략은 북한에 대한 -고립전략-(Strategy of Isolation)이다. 다른 문제(이라크 등)에 신경을 집중하며 북한 문제는 기다린다는 상태이다. 북한이 경제적으로 절박한 상태에 있음을 가정하는 미국의 전략이다. 북한이 예상보다 훨씬 빨리 강수를 택하는 이유는 미국이 가정하고 있듯이 북한의 상태가 절박함을 반영하고 있다고 보인다. 현 미국정부는 클린턴 행정부와 같이 북한의 도발에 사사건건 대응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이며, 북한이 먼저 행동으로 보이라는 것이 미국의 전략이다. 현재까지 북한의 반응은 위기의 증폭(esclation)입니다. 2001년 9.11테러 직후 미국은 4년주기 국방검토보고서를 발행하면서 공세적 방테러와 비확산 정책을 강력히 추진하고 예방적 타격(preventive strike)과 선제적 타격 (preemptive strike)개념을 분명히 했다. 미국의 변화에 대하여 변화해야 할 국가는 북한임을 알아야 한다.
 
탈냉전이후 북한의 대외전략에도 많은 변화가 있어 왔다.  냉전 종식 이후 북한의 대미정책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안전보장의 추구’가 된다. 여기서 안보(security)라 함은 외부로부터의 군사적 위협의 억제뿐만 아니라 내부나 외부의 각종 도전으로부터 체제가 생존해나가는 것까지를 의미하는 이른바 생존전략차원의 의미를 갖는다.
 
냉전기 북한의 안보전략의 핵심목표는 통일을 위한 안보전략과 한-미동맹의 와해였다. 이는 김일성이 “국제혁명역량의 강화는 미제침략자를 한반도에서 몰아내는 것”이라고 지적했던 바와 같다. 이러한 전략은 한국전쟁의 한반도 공산화 실패 경험속에서 자연스럽게 터득된 것이었다. 미국의 개입에 의해서 한반도의 공산화가 좌절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 북한 지도부의 안보전략차원의 인식의 결과였고, 그 만큼 미국의 한반도 개입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것이야말로 냉전기 북한의 제1의 안보전략목표였다. 그러므로, 북한은 미국민의 여론이 주한미군의 철수를 요구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여러 가지 강온의 행동을 취했다.
탈냉전기 북한의 안보전략은 통일전략에서 벗어나 단순한 생존전략차원으로 격하되게 되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국제냉전의 종식을 기점으로 북한체제의 절대명제가 ‘남조선 혁명전략’에서 체제유지를 위한생존전략으로 변화되었기 때문이다. ‘3대혁명역량’의 강화를 바탕으로 한 남조선 혁명전략은 외교적 고립, 내부경제의 피폐, 그리고 남한내의 정통성을 확보한 민주정부의 등장에 따라 그 주요수단을 상실하게 되었다.  또한 소련의 신사고 외교로 촉발된 1980년대말 이래의 국제질서의 지각변동은 북방의 동맹관계를 활용하는 냉전기 북한의 통일전략으로서의 안보전략의 실질적 기초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가져왔고, 이에 따라 북한은 냉전기 안보전략을 수정해야만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냉전기의 안보전략의 주요목적과 그 달성수단이 사라진 셈이었다. 냉전 종식 이후의 북한체제의 절대명제는 체제의 존속이라고 하는 생존의 문제였는 바, 탈냉전기 북한의 안보전략은 다름 아닌 생존확보전략이었고 그 것의 핵심은 미국체제에 대한 냉전적 균형행위가 아니라 바로 편승의 선택이었다. 
 
핵문제 해법과 우리의 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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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6자회담에서  계속 선 핵포기 요구를 거부하고 회담을 파기시킨 뒤 핵보유 선언이나 핵실험을 강행한다면 북핵사태는 외교적 해결 국면에서 강압적 해결 국면으로 전환 될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북한은 비록 중국이 참여하는 다자간 경제봉쇄가 가해지더라도 굴복하지 않은 가능성이 있다. 국제사회가 대북제재에 나설 때 북한은 계속 핵 및 대량살상무기를 이용하여 정치.군사적 공갈을 하면서 군사적 긴장을 높일 것이며, 그 과정에서 소규모 도발을 선택할 가능성이 있고, 이에 대하여 한미 양국이 대응하면 보다 큰 도발을 획책할 가능성이 배제할 수 없다. 중국이 대북 압박에 가세할 수는 있지만 일단 군사적 제재에 돌입하면 러시아와 함께 북한편에 설 수 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에 미국이 군사적 조치를 가한다면,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와 도와줄 것이라는 희망적 사고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외교적 노력이 시도되고 있는 현 상태의 지속은 북한에게 군사대결의 위험을 최소화하면서 대외적 입지를 강화할 수 있는 이점을 제공한다. 북한은 핵문제에 대하여 미국과 심리전을 계속하면서 밀고 당기기를 통해 시간 벌기를 노릴 것이고, 이는 내년 대통령 선거에서 부시 대통령의 재선 실패후 민주당 정권이 들어서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그렇기 때문에 김정일은 핵을 포기하고 개혁.개방을 선택할 생각을 하지 않고, 남북간의 민족공조를 앞세워 미국의 포위망을 탈출해 나가는 전략으로 밀고 나갈 가능성이 높다.
 
한편 북한은 현재의 외교적 협상이 자신들에게 불리하다고 생각이 되면 핵 보유를 공식적으로 발표할 결정적 시기를 노릴 것이다. 그 시기는 현재의 핵 카드 효용이 소멸되었다고 판단했을 때, 보다 강력한 대미 위협수단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때, 유엔 안보리의 제재 결의 임박하거나 확실 했을 때, 제재 조치가 가해짐으로써 북한 체제의 생존이 위협을 느꼈을 때 이며, 공식화 방법은 아마도 핵 보유의 공식 선언 또는 핵실험의 실시가 될 것이다.
 
미국은 외교적 해결방안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지만 북한의 도발적 행동에는 군사적 수단을 배제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몇가지 이유에서 북한상황이 이라크 상황과는 다른 전략을 필요로 한다. 즉 지정학적으로 중국, 러시아, 일본이 주변국에 있어 대규모 지역분쟁을 야기 시킬 수 있고, 북한은 이라크와는 달리 지역패권을 노리며 대량살상 무기체계를 개발하는  것이 아니고, 또한 이라크와는 달리 군사공격에 의한 북한 민주화가 쉽지 않다는 점 들이다.
 
현재의 외교적 노력이 실패로 돌아갈 경우 미극은 추가적인 조치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으며, 군사분야에서 미국이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방위력 증강, 해상봉쇄, 핵시설파괴, 기습공격 등이다. 첫째, 방위력 증강으로 미국의 방위력 증강으로 북한을 압박함으로서 핵포기를 유도하는 것이다. 미국은 현재 진행중인 110억 달러를 투입하여 주한미군의 전력을 증강하며 사태 진전에 따라 한국에 전술핵의 재배치, 항모의 추가 배비 등이 고려 될 수 있다. 둘째, 해안봉쇄로써 유엔 안보리의 결의를 통해 한미일 공조 혹은 미국 단독으로 북한 해역을 봉쇄하여 경제적 압박을 가하는 것이다. 셋째, 핵시설 파괴로서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북한내 지하시설 8,000여개 보유 , 핵시설물의 정확한 정보 미보유, 그리고 미국의 핵 파괴 능력에 따라 성공여부가 달라진다.  넷째, 기습공격으로 이미 미국은 9.11테러이후 선제공격으로 안보전략을 전환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이 대안을 채택하기엔 어렵고 위험부담도 크다.
 
우리의 대응
북한 핵이 누구를 위협하는지에 대해서도 견해의 일치가 없는 것 같다. 국제정치 힘의 구조상, 북한이 미국과 협상하기 위해 내 논 핵 카드가 미국을 위협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이라는 인질이 있기 때문에 북한 핵이 협상 카드로서 효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한국이 없다면 북한의 핵문제는 미국이 보기에 이라크 문제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물론 중국의 존재도 고려 사항이다.
 
북한의 핵문제는 한반도 통일문제처럼  부닥쳐야 할 문제가 되었다. 북한 핵문제는 안보 문제이며 전쟁과 평화의 문제이다. 한국정부가 취해야 할 가장 중요한 정책 대안은 국제적 공조이다. 한 미 일 은 물론 러시아, 중국과의 공조이다. 한 미 일의 공조는 특히 중요하다. 미국과 일본이 당분간 북한에 대한 경제지원을 중지할 경우, 한국도 이에 동참해야 문제가 해결된다. 물론 이에 대한 逆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현재 한반도 주변의 국제정치 기류는 북한의 요구를 들어주기보다는 압박을 가하는 쪽으로 향하고 있다. 94년 이후 북한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사실이 가장 큰 이유이다.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북한 핵의 `제거`가 문제 해결의 종점이다.
 
북한은 체제의 보장을 원하지만 이 문제 역시 불분명 하다. 경제적으로 북한이 원하는 체제는 무엇이며 정치적으로 북한이 원하는 체제는 무엇인가- 한국과 세계가 북한이 원하는 체제의 안전을 보장할 방법이 있는지도 모른다. 북한핵문제가 해결되기 위해 가장 확실한 방법은 북한이 체제의 보장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체제의 변혁이라는 과감한 결단을 내리는 것이다. 체제를 개혁한다면 핵을 만들어가며 어려운 싸움을 전개할 이유가 소멸된다. 북한의 과감한 체제 변혁의 결단을 요구해야 할 것은 한국 정치인들의 몫이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즈 지는 -북한의 벼랑 끝 전술은 미국이 한반도에서 전쟁을 원치 않는다는 것을 잘 아는데서 출발한 고도의 전술- 이라는 평을 소개하고 있다. 문제는 2006년인 지금도 과거와 같은 전략이 통용 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다. 원했던 것이던 아니던 9.11 테러사건이 초래한 세계의 변화 때문이고 미국 안보전략의 근본적 변화 때문이다.
 
이제 미국의 대이라크 전쟁이 종결되면 한반도는 앞으로 다가올 수개월 혹은 1-2년은 한반도의 긴장이 다시 고조되는 시기가 될 것이다 라고 말했던 사항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요즈음 한국에는 긴장 그 자체조차 두려워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그 결과 경제 제재조차 허락할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군사 안보 전략은 역설적인 영역의 일이다. 베제티우스는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에 대비하라 했다. 유화정책이 오히려 전쟁을 불러일으킨 경우도 있다. 자신과 견해가 다른 방안에 대해 그러면 전쟁하자는 것이냐며 욱박지르는 단순 논리로 북한 핵문제를 풀려는 것은 전략적 태도는 아니다. 우리나라 정부가 계속 주장 해온 국제 共助가 단순한 修辭가 아니라 진정한 국제협력이 되기를 기대한다. 미국과 일본과의 정책 공조는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타당한 현실적인 방안이기 때문이다.
 
결론 
자발적인 선택이든 아니면 외적 환경에 의하여 부과된 강제적인 선택이든 냉전 종식 이후 북한 지도부가 안보전략상의 큰 전환을 모색해온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사회주의권의 대붕괴와 미국주도의 일극중심체제 속에서 생존의 문제가 절박해졌기 때문이다. 평양은 미국체제의 압도적 전개 속에서 신뢰할 만한 안보적 보장자로서의 배후의 동맹세력을 모두 상실했던 것이다. 북한 지도부로서는 미국체제에의 순응을 통해서 생존을 보장받으려 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북한의 냉전 종식 이후의 안보전략으로서의 미국체제에의 편승전략이 북-미관계에 의미하는 바는 비교적 분명하다. 북한의 대미 편승전략의 목적지는 북-미관계 정상화이며, 이를 위해서 북한으로서는 우선 미국과의 협상을 위한 수단과 논리를 개발할 필요가 있었는 바, 미국의 세계전략상의 핵심 어젠다에 대한 충격요법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1993-4년의 제1차 북핵 위기는 NPT레짐의 보존이라고 하는 클린턴 행정부의 세계전략상의 핵심 이슈에 대한 도전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2002년 10월 이래의 제2차 북핵 위기는 부시 행정부의 테러전쟁과 연계된 비확산 전략에 대한 도전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주목할만한 사실은 제1차 북핵 위기와 제2차 북핵 위기 모두에서 공통적으로 보여지는 북한의 행태는 미국과의 극단적 대결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전술했듯이 제1차 북핵 위기시 북한은 미국측에 먼저 협상의사를 전달했으며, 금번 제2차 북핵 위기에서도 의도적인 ‘위기의 조절’ 행태를 보여주면서 마찬가지의 행태를 보여줬다. 모두 위험스런 양상을 보인 것은 사실이나 대미협상을 통해 북-미관계 정상화를 이룩함으로써 체제안전을 확보하고자 하는 북한 지도부의 강력한 의도가 개입된 결과였다. 이렇게 볼 때, ‘바그다드 효과’를 부정할 수는 없으나, 북한의 다자회담 수용을 통한 북핵 협상국면의 선택은 북한의 냉전종식 이후 달라진 북한의 안보전략변화에서 근원한 것으로 보아야한다. 사실, 북한은 한-미간의 팀스피리트 훈련을 “공화국 북반부를 선제타격하기 위한 예비전쟁이며, 핵시험 전쟁”으로 인식해왔던 만큼, 북한의 입장에서는 금번의 이라크 전쟁이 갖는 ‘바그다드 효과’를 팀스피리트 훈련을 통해서 이미 체험해왔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상기한 맥락에 비추어 볼때, 지금의 제2차 북핵 위기는 어떻게 결말지워질 것인가- 북한으로서는 매우 현실적인 타협적 선택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반도의 비핵화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 중국의 압력과 자력불능의 파산된 경제구조 상황아래 있는 북한으로서는 미국체제의 편승을 가능한 빨리 이뤄내야 하는 입장에 있는 것이다. 부시 행정부가 북한의 체면을 살려주는 호응의 접근법을 선택할 시 북한으로서는 만족스럽지는 않다하더라도 그 해법에 동의할 가능성이 높다. 부시 행정부의 전략적 선택이 주목된다. 비록, 현재 부시 행정부가 북핵 문제의 리스크 분담과 자국의 동북아 전략구도 장악 차원에서 확대된 다자회담을 주장하는 등 북핵 문제를 시간이 걸리는 사안으로 바라보고는 있으나, 북-미관계에서 비이념적인 현실주의적 변수들이 미국의 전략계산에 크게 개입할 경우에는 북-미관계가 비교적 빠르게 진전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사실, 부시 행정부는 공식적으로 북핵 문제를 외교적인 방법을 통해서 평화적으로 해결할 것임을 계속해서 밝혀왔으며, 이라크 전쟁 이후에도 마찬가지의 반응을 보여왔다. 북핵 문제가 수습으로 가닥이 잡히게 된다면 북-미관계는 탄력을 받으면서 진행될 수도 있다. 만약의 이러한 상황전개시 그것은 한반도 안보환경에 대한 큰 변화를 의미한다. 북-미관계에서 한반도상의 갈등적 안보이익을 둘러싸고 거래관계가 형성될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다. 한-미동맹을 지혜롭게 관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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