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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해병대 장병 정신전력 강화방안(연구관 박창규)-제 3 장 해병대 장병의 국가관
작성자 박창규 작성일2008-11-11 오후 12:2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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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장 해병대 장병의 국가관

  제 1 절 해병대 장병의 국가관 성립 과정

  해병대 장병의 국가관은 대한민국 국민이란 점에서는 전체 한국인의 가치관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군인으로써 가치관 즉 군인정신 측면에서 본다면 앞서 살펴 본 한국군의 가치관 성립과정과 각 군의 가치관 고찰에서와 같이 타군과 차별화된 부분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해병대 특유의 성장과정과 전통에서 창출된 이른바 “해병정신”과 직결되며 해병대 장병의 국가관에 대한 이해는 해병의 전통과 해병정신에 대한 이해가 선행 되어야 한다.
  이에 본 절에서는 해병대 역사와 훈련과정을 통해 해병대의 국가관 성립 과정을 알아보고자 한다.

     1. 해병대의 창설과 성장

  해병대의 창설은 1948년 10월 여수, 순천 사건으로 인한 해, 육상 작전의 필요성을 절감한 해군 지도부에 의해 국군 조직법이 아닌 대통령령(88호 1949.5.15)으로 급조되었다.
  대통령령 88호 (1949. 5. 5) 제 2조에 의하면 “해병대는 해군의 필요한 육상 작전 기지 경비 임무를 수행한다”로 되어있어 해군의 일부 보조 부대로써 당시 미 해병대의 함대해병개념정도의 미미한 수준이었다. 당시 채병덕 참모총장이 해병대의 창설을 창설(1949. 4. 15) 이 후 육군 단 ․ 대장 회의 (1949. 6월) 때에야 실질적으로 알게 되었다는 일화는 해병대의 창설이 얼마나 극적이며 미미한 수준이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당시 육군은 “육군만 있으면 되지 무슨 해군육전대냐”는 반응이었고, 심지어 보유 장비에서도 M1소총, 경기관총, 박격포, BAR등을 요구해도 “육군도 부족하다”는 이유로 전혀 보급이 안 되어 목총과 일본 99식 소총으로 무장할 수밖에 없었으며 이것 역시 탄약도 없고 총열도 부식되어 사격훈련을 할 수 없어 제식훈련용으로 밖에 사용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이와 같이 해병대는 창설 초기부터 육군 등의 견제를 받았으며 창설 이후에도 여러 가지 이유와 여건 때문에 미 해병대와 유사한 이른바 정체성(Identity) 문제에 시달리면서 통폐합과 재창설 등의 힘겨운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성장 배경은 타군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해병대 특유의 전통관, 이른바 ‘해병 정신’을 창출하는 환경적 여건이 되었다.
  해병대는 창설 초기의 역경을 딛고 6.25 전쟁 초기 북괴군 정예 6사단을 진동리 전투에서 섬멸하고 승승장구하던 북괴군 7사단을 통영지구작전에서 격파하여 국군최초로 전부대원 일계급 특진과 “귀신 잡는 해병”이란 닉네임을 받았다.
  전쟁초기 해병대의 찬란한 승리는 이들에게 무한한 자신감을 주었으며 소수정예군으로써의 가족적인 단결정신과 함께 ‘필승의 신념’을 갖게 하였다.
   이 후 수도탈환작전에서는 중앙청에 태극기를 계양하였고 동부전선에서는 세계최강 미 해병대와 임무 교대한 도솔산 고지전투에서 승리하여 “무적해병”의 휘호를 받았으며 휴전협정이 체결되기 직전 수도서울의 관문인 사천강 전투는 미 해병대 마저 경탄을 금치 못하게 했다. 수도 서울의 관문인 서부전선에 미군이 아닌 한국군이 승전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작전권을 가진 미군 당국과 이승만 대통령의 한국해병대에 대한 신뢰가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해병대는 창설 초의 어려움을 딛고 6.25전쟁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승전을 거듭하면서 성장 발전하였고 월남 파병을 통하여 다시 한 번 상승 불패의 해병전통을 대내외에 과시하면서 국민에게 신뢰받는 해병으로 성장하였다. 해군의 일개 보조부대로 출발한 해병대가 눈부신 발전을 하게 된 요인은, 크게는 국가발전의 외적인 요인으로 설명될 수 있으나 이 외에도 다양한 측면에서 여러 가지로 설명 될 수 있다.

  첫째 : 태동과정에서의 악조건들이 불굴의 투지로 승화되어 오히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긍정적인 작용을 하였고,
  둘째 : 6.25 전쟁 초기의 전투에서 “패배는 곧 전멸”이라는 절대 절명의 상황 하에 소수정예로써 가족적인 전우애가 무서운 단결력으로 나타났으며 이러한 요소들이 탁월한 지휘능력과 결합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셋째 : 6.25 직전의 제주 주둔기도 해병대 발전의 원동력이 된 행운으로 평가되는데 제주 출신 신병 3․4기생들은 당시로서는 지금으로 따지면 대졸이상의 엘리트 계층으로 반공의식이 투철하였으며 단계적인 교육훈련과 전장 경험이 절묘하게 조화되어 인천 상륙 작전 이 후 수도탈환 작전, 도솔산 고지 전투 등에서 맹활약을 하였으며 이들의 조국애와 질박한 품성, 무서운 투지와 인내력, 향토성에서 비롯된 전우애가 상호 작용하여 해병대 전통 수립에 큰 역할을 하였다고 본다.
 넷째  : 전쟁 초기 미 해병대와의 만남 또한 한국 해병대의 전통 수립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킨 테스크포스 작전”에 따라 한국 해병대가 미 해병 5연대 3대대와 만나게 되었는데, 미 해병대는 6.25 전쟁 시 한국 해병대와 같이 전투하면서 이들의 용전 분투에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이 후 미 해병대는 동병상련하는 형제애로 한국 해병대에 각별한 지원을 했는데 각 종 교육훈련체제부터 장비물자는 물론 군원 유학에 이르기 까지 많은 혜택을 주었다.
  그러나 미 해병대가 한국해병대에 미친 영향은 이러한 물적 지원보다 세계 최강을 자랑하는 그들의 자부심과 긍지, 뜨거운 조국애 등 정신적인 가치가 더 크다 하겠다. “Once A marine is Forever A marine", "나, 해병대, 그리고 조국” 같은 표어는 사실상 한미해병대가 상호 공유하는 또 상호 인정하는 공통적인 정신적 상징어 이다.
  이 외에도 삼군에 가장 앞섰던 교육훈련체계(진해 교육기지 사령부, 승파관, DI제도 등), 평균 4대 1이 넘는 지원율과 입대동기, 전역 후에도 국가위난이나 사회봉사 활동에 앞장서는 예비역들의 활동 등은 해병대의 가치관과 국가관을 이해하는데 충분한 해답이 된다고 본다.

       2. 해병대 장병의 훈련과정

  해병대 교육은 타군 교육과 비교 시 실질적으로 교과편성 및 교육 내용 면에서 해병대 특성에 맞는 일부 훈련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차이를 발견할 수 없다. 그러나 군에 입대할 당시에는 자질이 비슷할지라도 교육을 마치고 난 뒤 부터는 확연히 다른 차이를 느끼게 된다.
  그 이유는 다음 아닌 스스로가 선택한 해병이 되기 위한 성취욕과 함께 ‘多流汗  少流血(땀을 많이 흘리면 피를 적게 흘린다)’이라는 일념 하에 ‘해병이 되기 위해서 이 훈련을 왜 해야 하는가?’라는 명확한 목적의식의 주입과 자발적인 정복의지가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해병대는 자신의 의지와 선택에 따라 입대하는 지원제 모병을 택하고 있다. 해병의 신분은 장교, 부사관, 병으로 구분되며 먼저 장교가 되기 위해서는 일반정규 대학 졸업 후 사관후보생으로 지원 입대하여 14주간의 신분전환 및 장교 기초교육 이수 후 임관하여 초등군사반 교육을 거쳐 실무부대에 배치되는 과정과 해군 사관학교 및 학군 무관후보생(ROTC : Reserve Officers Training Corps) 출신 중에서 해병대에 지원하는 자를 사전에 선발하는 과정이 있다.
  부사관은 고졸이상의 학력을 갖춘 자 중에서 선발하여 14주간의 신분전환 및 부사관 기초교육을 실시 후 하사로 임용, 해당 병과별 주특기 교육을 받은 후 실무부대에 배치되어 최하위 제대 지휘자로서 장교와 병간의 교량적 역할을 하게 된다. 한편 실무부대에서 병으로 복무하는 자 중에서 자질이 우수한 자원을 분대장요원으로 선발하여 부사관 기초교육 후 하사로 임용, 분대장 직책을 수행토록 하는 제도도 병행하고 있다.
  병은 고졸이상의 학력으로 지원자 중 기본자질을 갖춘 자로 선발하여 6주간의 신분전환 교육을 거쳐 군 생활을 하게 된다.
 
  해병대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대학 입시와 마찬가지로 높은 경쟁률 속에서 선발과정을 거치게 된다. 해병대에 지원한 1차 합격자들은 교육훈련단에 입소하여 3일간의 가입소 기간 동안 신체검사 및 체력 측정과 의지력 테스트 결과 등을 종합하여 최종선발 되며 일부 부적격자는 귀향 조치한다.

  첫째 주 월요일 그들은 오른손을 들고 “훈병(하후생, 사관후보생) ○○○은 대한민국의 군인으로서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충성을 다하고 법규를 준수하며 상관의 명령에 복종하고 맡은바 임무를 성실히 수행할 것을 엄숙히 선서합니다”라는 내용의 선서를 하게 되며 입소식을 마치는 순간부터 짜여 진 일정에 따라 본격적인 교육에 임하게 된다.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예의 주시하면서 직접적으로 해병을 만들어가는 자들은 바로 훈련교관(DI : Drill Instructor)이나 구대장이다. 이들은 해병대 최고의 엘리트로써 그 자부심과 긍지는 명품을 만드는 장인(匠人) 정신과 같다. 이것이 해병대가 자랑하는 DI 제도로써 과거에는 미 해병대의 DI 유학이 필수과정 이었으며 지금도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은 해병정신의 표준이 되고 있다.
  또한 신분에 관계없이 공통적으로 1주간에 걸쳐 실시하는 ‘극기주 훈련'(일명 지옥주 훈련)과 누구나 반드시 이수해야 하는 ‘천자봉 구보’라던가 해병의 기질을 최대한 살린 ‘해병 축구’라는 운동경기 등으로  강한 정신력과 체력을 함양하고 있다. 이 해병축구는 마치 축구와 럭비를 합한 것과 같은 형태의 단체 경기로 한 팀에 보통 1개 소대 규모의 팀을 만든 후 경기규칙에 별다른 제한을 받지 않으면서 축구공 또는 럭비공을 잡고 뛰거나, 차고 던져서 상대방 진영 후미의 써클 안에 있는 자기편 골잡이에게 공을 전달하여 득점을 많이 하는 팀이 이기게 되는데, 이 경기를 통해 끈질긴 승부근성과 응집력을 길러 전투 훈련적 효과를 달성케 하고 있다.
이상과 같은 교육과정은 사실상 타군에 비해 특별히 차별화 되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지만 나름대로의 독특한 의미부여와 스파르타식 정신교육으로 극적인 효과를 나타낸다. 해병들은 인간한계에까지 도달하는 극한의 훈련과정에서 “이것도 못 견디고 해병이 될 수 있는가”라는 교관의 질책 속에서  “누구나 해병이 될 수 있다면 나는 결코 해병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란 말을 상기하면서 진정한 해병이 되어 가는 것이다.
해병대의 이러한 훈련 과정은 평범한 젊은이를 극한의 훈련을 이겨낸 자신감과 본인이 원하여 선택한 해병대의 일원이 되었다는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게 하며 실무부대 구성원과의 생활 속에서 해병대 특유의 이른바 해병정신을 체득하게 된다.

   제 2 절 해병대 장병 국가관의 특성

해병대 장병의 국가관은 해병대의 성장과정과 훈련과정에 대한 이해와 함께 그 특성을 고찰함으로써 보다 충분한 설명이 가능하다. 본 절에서는 해병대 장병의 국가관의 특성을 해병대 자신들이 말하는 ‘해병정신’과 미 해병대의 예를 분석하고 일반 국민들이 보는 해병대에 대한 인식을 종합하여 고찰하고자 한다.

    1. 해병대의 일반적 특성

  한국 해병들이 즐겨 부르는 군가 중의 하나인 「나가자 해병대」의 가사 속에는 해병대가 과연 어떠한 성격을 지니고 있는 군인가 하는 것이 잘 나타나고 있다. 해병대(海兵隊)는 글자가 의미하는 바와 같이 육상에서만 전투를 수행하는 군이 아닌 “바다의 용사”이다. 그러면서도 육상의 전투까지도 수행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 용사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가자 해병대」에서도 해병대는 “대한의 바다의 용사”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창파를 해치며 나아가는 무쌍의 청룡”이며 “험산을 달리는 무적의 맹호”로 그 역할과 임무의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해병대의 노래」에서도 “오늘은 푸른 바다 잠 베게 삼고 내일은 산골짝의 적을 찾아서”라고 표현함으로써 해병은 바다의 용사인 동시에 육상의 용사인 이중적 특성을 지니고 있음을 잘 표출 하고 있다.

      2. 해병 혼

  해병대의 특성을 논할 때 “해병 혼”을 빼놓을 수 없다. 혼(婚)이라 함은 인간의 육체에 깃들어 마음의 작용을 지배하는 것으로서 우리 해병대는 창설 당시 제정된 ‘나가자 해병대’가의 제 2절 “천지를 진동하는 대한 해병 혼”이라는 가사에서 볼 수 있듯이 일찍이 정신영역 개발에 중점을 두어 해병대만의 특유한 “해병 혼”이라는 용어를 창출했다.
  해병대 정신의 근저(根柢)가 되는 해병대 혼은 바로 “필승의 신념”으로 이는 승리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동시에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말한다.
  이러한 필승의 신념은 해병들로 하여금 싸움에서 꼭 승리한다고 하는 확고한 믿음과 자신감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전장에서 주저함이 없고 우유부단하지 않으며 죽음을 무릅쓰고라도 꼭 책임을 완수하겠다는 적극적인 행동을 유발하게 한다.
  중국의 병학가 한비자(韓非子)도 “군사는 반드시 싸워 이기겠다는 마음이 가슴속에 끓어올랐을 때 비로소 그 싸움에서 이긴다.(兵典具必者)”고 하여 필승의 신념을 전승의 요체로 삼았다.
  타군은 적의 강력한 저항에 직면하거나 작전에서 실패하더라도 일단 후퇴할 수 있지만 상륙작전을 주 임무로 하는 해병대는, 적 해안에 투사되고 나면 배수의 진을 치고 적전(敵前)에서 싸워야 하는 상륙군이다. 이러한 전장 환경에서 물러섬은 곧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에 시위를 떠난 화살이 되돌아오거나 멈춰 설 수 없듯이 오로지 전진뿐이며 살아남기 위해서는 적과 싸워 이기는 수밖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숙명 속에서 “반드시 승리해야만 살아남는다”고 하는 승리에 대한 강한 신념이 자연적으로 생성되어 해병혼의 근간이 되고 있다.

      3. 해병 정신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필수적 요소인 군인정신은 한마디로 군인이 갖추어야 할 이상적 정신자세로서 해병대 정신 역시 해병대에 몸담고 있는 모든 해병들이 갖추어야 할 이상적 정신자세라 하겠다.
해병대 정신은 1953년 3월 해병대사령부에서 발간한 ‘해병전투사’에서 해병대 정신(원 명칭 : 해병대의 전설)을 ①가족적 단결 정신 ②애민 정신 ③인내의 정신 ④임전무퇴의 정신 등 네 가지로 정하여 처음으로 정립하게 되었으며 이를 근간으로 1987년 5월에 해병대 정신의 표어를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으로 정하고 그 실천 정신을 ①단결 정신 ②애민 정신 ③인내 정신 ④임전무퇴 정신으로 하는 부분적인 수정보완 하였다.
그 후 해병대 역사와 전통의 재조명을 통해 현재의 해병대 정신으로 1997년 5월에 재정립하게 되었다.


 ◇ 표어 :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
  해병대 조직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해병대에 입대한 그 순간부터 해병대를 떠나는 그 순간까지 몸소 체험하고 느꼈던 일상생활의 모든 것에 자부심과 명예심을 가지고 언제, 어디서나 자신이 해병대의 일원이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면서 예비역이 된 이후에도 영원한 해병으로 남기를 희구한다.
  군문을 떠나서도 진하게 타오르는 모군에 대한 향수와 애정으로 출신, 계급, 연령에 관계없이 해병대 조직 구성원으로서 맺어지는 끈끈한 관계는 단순히 해병이었기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해병대 정신 속에서 형성되고 있다.
  또한 국가와 민족을 초월하여 자유우방국가의 모든 해병대가 그들 국가에서 갖는 지위와 역할 면에서 공통점이 많기 때문에 상호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음을 감안할 때 평화의 선봉군으로서 갖는 이 표어에 대한 긍지는 그 어느 것보다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즉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는 표어야말로 해병대만이 지니는 특유의 정신덕목이요, 해병대 정신의 가장 굳건한 바탕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비록 이 표어가 미 해병대의 “Once a Marine, Always a Marine”에서 유래된 것이라고는 하지만 지난 반세기 동안 사용해온 한국 해병대의 것으로 일반국민들까지도 해병대의 상징표어로 널리 인식하고 있다.

◇ 무적 해병의 상승불패 정신
적과 싸우면 항상 이기는 상승불패의 정신은 화랑도의 임전무퇴 기상을 바탕으로 하는 불패정신(不敗精神)과 임진왜란 당시 불과 12척의 전선(戰船)으로 130여척의 왜전선(倭戰船)을 물리친 이순신 장군의 '必生卽死, 必死卽生‘ 정신을 기저(基底)로 하여 반세기 역사 속에 형성된 해병대 전통정신이다.
한국전쟁에서 3년여의 기간 동안 쉴 새 없이 가장 험난한 20여개 지역의 전선을 누비면서 싸워온 수많은 전투 중에서 상승불패의 정신을 승화시킨 대표적인 전투로는 전 장병이 일계급 특진한 ‘진동리 지구전투’, 귀신잡는 해병의 명성을 얻은 ‘통영지구 전투’, 낙동강 방어선으로부터 반격작전으로 공세이전 시킨 ‘인천상륙작전’, 용감한 해병들에 의해 중앙청에 태극기를 게양하여 수도 서울 수복의 상징이 되었던 ‘서울 탈환작전’, 산악전 사상 유래 없는 승리로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無敵海兵’ 휘호를 하사 받아 무적해병 전통의 초석이 되었던 ‘도솔산 지구 전투’ 그리고 적의 최정예 부대를 격퇴시키고 아군이 중동부 전선의 통제권을 장악하는데 절대적으로 기여한 ‘김일성 ․ 모택동고지 전투’ 등을 들 수 있으며 베트남 전쟁에서도 6년 5개월간 월남 전역을 누비면서 총 15만여 회의 대 ․ 소작전을 통해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그 중에서 월남전 사상 유래 없는 전과를 올려 국내외에 널리 알려진 ‘짜빈동 기습방어전’의 승리로 신화를 남긴 해병의 명성을 얻음으로써 한국전쟁으로부터 월남 전쟁에 이르기까지 싸움터에서는 항상 이기는 무적해병의 신화를 창출해 내었다.
초창기 열악한 병력과 장비로 창설된 이래 한국전쟁과 월남전쟁에서 험난한 전투를 수행하면서 특유의 인내와 끈기, 강한 투지력으로 공격하여 빼앗지 못한 고지가 없었고, 방어하여 사수하지 못한 진지가 없었던 상승불패의 전통을 수립하게 되었으며 이와 같은 상승불패의 기록들은 해병대의 역사인 동시에 국군의 역사가 되고 있다.
이러한 해병대 전통정신은 국방부에서 발행하여 전군에 통일교재로 쓰고 있는 ‘국군 정신 전력교본’에 명시되어 있다. 교본 제 3장 군인정신과 복무 규범 편에 한국적 군인정신의 덕목으로 ‘임전무퇴의 기상과 용기’를 대표적인 덕목임을 강조하면서 불패정신을 계승하고 있는 해병대 조직 구성원들의 자질에 대해 “한국 해병대의 ‘무적해병의 신화’도 따지고 보면 용감한 해병들이 있었기에 생긴 것이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이는 곧 해병대의 상승불패 정신이야말로 대한민국 국군 모두에게 요구되는 군인정신의 귀감이 되고 있음을 입증하는 대표적 예라 할 수 있다.

◇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정신
해병대가 오늘날 타군에 비해 상대적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강한 군대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바로 끈질긴 생존력을 바탕으로 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정신은 바다라는 무(無)의 상태에서 적진에 돌격을 감행하여 새로운 영토인 해안두보를 탈취 확보하여 상륙군의 병력과 장비, 물자를 축적함으로써 유(有)를 창출해 내는 상륙작전의 특수성을 감안한 해병대의 특징적인 정신이라고 하겠다.
초창기 불비한 여건과 환경 속에서도 오로지 최강의 군대를 만들겠다는 의지 하나만으로 병력․장비 및 시설의 열악함을 탓하기 전에 ‘多流汗, 少流血’을 모토로 내걸고 강도 높은 교육훈련에 전념함으로써 제반 난관을 극복하고 싸워서 이길 수 있는 군대의 면모를 조기에 갖출 수 있었다.
특히 진주지구 공비토벌 작전은 창설된 지 불과 4개월만에 진주지역 일대에서 준동하는 공비 소탕작전 임무를 훌륭히 수행하여 지역을 안정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해병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 최초의 예가 되고 있다.
그 후 해병대는 한국전쟁 기간 동안 20여개의 전선지역을 누비면서 항상 새로운 지역에서 적과 싸워 주도권을 장악한 다음 전투력을 축적하는데 선봉장 역할을 하였다. 또한 월남 파병 시에는 1965년 10월 9일 캄란만에 상륙한 이후 1972년 2월 29일 마지막으로 다낭에서 개선 귀국할 때까지 열사와 밀림지에서 온갖 고난을 극복하면서 적 치하에 있는 지역을 평정한 후 후속하는 타군 부대에 인계하고 계속 북상 전진하여 또 다른 새로운 지역을 평정해 나가는 임무를 차질 없이 수행할 수 있었던 점 역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정신에 기인한 것이다.

◇ 정의와 자유를 수호하는 정신
대한민국 국군이 추구해야 할 기본가치와 존재목적이 “국군은 국민의 군대로서 국가를 방위하고 자유 민주주의를 수호하며 조국의 통일에 이바지함을 그 이념으로 한다”라고 국군의 이념에 명시되어 있듯이 해병대 또한 창설 당시 신현준 초대 사령관이 “해병대는 국가와 국민을 위하여 자유를 수호하는 역사를 창출하자”고 피력함으로써 해병대가 추구할 가치와 존재 목적을 최초로 천명하게 되었다.   그 후,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을 통해 정의와 자유를 수호하는 정신을 전통정신의 핵심으로 삼아 실천하여 왔다. 해병대는 1967년 3월 21일 제정한 해병대 내규상의 ‘부대기 운영규정’편에 해병대 존재목적은 “정의와 자유를 위하여”라고 공식적으로 명시하였고 이 문구를 해병대 마크의 맨 윗부분인 독수리가 물고 있는 리본에 새기도록 규정하였다. 이는 해병대가 왜 존재하는가를 극명(克明)하게 나타내고 있으며 다음의 해병대 행동강령과 함께 해병대 장병의 국가관을 이해하는 가장 확실한 예라 하겠다.

◇ 해병대 행동 강령
  해병대는, 해병대에 몸담고 있는 구성원이라면 해병대가 추구하는 목표와 가치를 향해 정진(精進)할 수 있도록 해병대 행동강령을 제정하여 행동지침으로 삼고 있다.

 


 

       3. 미 해병대의 국가관

  미 해병대의 창설일은 1775년 11월 10일이다. ‘창설’이라고 부르는 대신에 해병대 전체를 하나의 생명체로 간주하여 ‘탄생’이라고 호칭하고 있다.

<도표 4> 미 의회 해병대 창설 결의문

 


      

 

  미 해병대가 (Marines Hymn)의 가사 속에는 전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하는 미 해병대의 역할이 잘 드러나 있다.“몬테주마의 전당에서, 프리폴리의 해안까지”를 언급하는 대목이나, “뜨거운 적도의 정글에서 얼어붙는 극지방에 휘날리는 미해병대의 깃발”은 전 세계 어디에나 달려가는 “Anytime, Anywhere"의 성격을 잘 보여주고 있고, 마지막 절의 ”육군과 해군이 천국을 보게 된다면, 그 거리를 지키고 있는 해병대를 보게 될 것이다“라는 구절은 가히 세계 최강이라는 자부심을 극명히 잘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90년대 중반에 데미무어와 톰 크루즈 주연으로 크게 화제가 되었던 ‘어 퓨 굿맨(A few good men)’을 보면 미 해병대의 국가관이 어떠한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미 해병대에 있어서 마치 한국 해병대의 백령도와 같이 최전방의 성격을 지닌 쿠바기지의 해병대 경비부대에서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해병을 교육 시키는 일종의 기합인 코드레드(Code Red)를 받다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고, 이를 파헤쳐 가는 군수사관들의 이야기가 배경이 되는데, 본 영화에서 해병 일병에게 코드레드 교육을 실시 하다가 사망케 한 당사자인 도슨 상병(LC. Dawson)은 사실을 말하면 무죄를 받을 수 있고 그렇지 아니하면 중형을 선고 받게 된다는 수사관들의 설득에도 부대의 신념인 “부대, 해병대, 하나님, 조국(Unit, Corps, God, Country)”을 언급하며 진실을 밝히려하지 않는 장면이 나온다. 바로 미 해병대 장병들이 자주 말하곤 하는 “나를 믿고 해병대를 믿고, 하나님과 조국을 믿는다.” 라는 표어에 담긴 국가관을 잘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 할 수 있겠다. 
  이는 곧 나를 위하고, 부대를 위하는 길이 국가를 위한 것, 따라서 국가관에 바로 부대에 대한 태도가 국가에 대한 태도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림 1. 미 해병의 국가관 인식
 
  당시 미국 대륙회의는 모국인 영국에 해병대(Royal Marine)가 있다는 이유로 이를 모방한 2개 대대 규모의 해병대 창설을 승인했다. 특별한 전략적인 배려가 있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닌 해병대는, 탄생 직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존재가 끊임없이 의문시되어온 군사조직이다. 해병대는 살아남기 위해 항상 싸워야 했고 이 싸움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 해병대의 운명이기도 하다. 이는 미 해병대 뿐만 아니라 우리 해병대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어 있다.
  이와 같이 미 해병대의 역사는 그 탄생부터 현재까지 육, 해, 공군과는 달리 언제든지 그 존폐 문제가 거론되는 불안정한 상태에서 지금 까지 발전해 온 공통점이 있다. 이는 해병대의 임무자체가 보는 시각에 따라 지상군과 해군, 심지어 공군까지 경계(境界)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국내 외적인 상황과 정치, 전략적인 문제도 간과될 수 없는 특성을 갖고 있다.

 

  미 해병대와 대한민국 해병대의 첫 만남은 6.25전쟁 초기인 1950년 8월 7일~10일까지 미 육군 25사단에 긴급 배속된 미 해병 제5연대 3대대(대대장 : R. Taplett)와 캔사스 라인 구축을 위한 전투에서였다. 이 때부터 미 해병대는 각별한 관심과 애정으로 한국 해병대에 물심양면의 지원을 하였고 대한민국 해병대는 이에 힘입어 6.25전쟁 당시 상상을 초월하는 전공을 쌓을 수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전 후 지금까지도 한국해병대는 미 해병대와 혈맹의 전우로써 또 동병상련하는 형제애로써 그리고 상승의 전통을 자랑하는 소수정예군으로써 각별한 우의를 다져왔으며 미 해병대의 문화와 가치관, 군인정신 등은 한국 해병대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4. 국민이 보는 해병대의 특성

 

  “국민이 보는 한국 해병대의 특성은 무엇인가?”
본 연구에서는 지난 2005년 「해병대 전략 연구소」의 발주로 연구된 해병대 국민의식 조사 “국민속의 해병대”(보훈연구원장; 임응환, 송미원 박사) 등 사계전문가의 연구 결과를 정리함으로써 국민이 보는 해병대의 특성을 고찰해 보고자 한다.
   해병대 국민의식조사 “국민 속의 해병대”에 의하면 ‘강하고 남자답다(48.5%), 단결력이 있다.(29.7%) ‘최전방에서 싸웠다’(6.5%)가 84.7%로 매우 긍정적인 답변을 했고,
        <그림2> 해병대 이미지
                             

 

 
 이러한 이미지에 대한 이유를 보면 “입대하면 강해지고 남자다워 지는 것 같아서(38.1%), ‘자신이 지원해서 들어가는 군이므로(36.7%)’, ‘가장 대표적인 한국군이므로(19.8%)’의 순으로 나타났다. 이 세 가지 이유가 전체의 94.6%이다. 응답자 특성별 이유를 보면, ‘입대하면..”을 이유로 한 응답자는 ’남자(38.9%), 연령대에서는 ‘중장년층(44.1%)에서, 직업에서는 ’자영업(54.1%), ‘화이트칼라(45.9%), ’가정주부(48.4%) 등이 교육수준 별로는 ‘초등졸 이하(75.0%)’과 ‘고졸(58.8%)’에서 높게 나왔다.
<그림3> 해병대 지원 동기

 

 

또한 제대 장병 이미지에게서 받은 이미지에서는 ‘해병대 출신이라는 자부심이 큰 것 같다’가 65.6%, ‘단결력이 강하다’는 16.3%로 전체의 81.9%를 차지하고 있다.

 

    <그림4> 제대 장병 이미지
  

 

전투력이나 사기가 높은 군이라는 이미지는 ‘해병대’가 응답자의 64.4%로 다른 군에 비해 매우 높다. 특성 별로 보면, 전체적으로 ‘해병대’를 전투력이나 사기가 높은 군으로 인식 하고 있으며, 육군이 18.8%로 다음을 차지하고 있다. 이는 상기한 해병대에 관한 인상, 제대한 장병에게서 느끼는 인상, 군단결, 군에 대한 자부심, 그리고 군의 전투력 사기에 이르기까지 해병대의 전반적인 군 이미지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매우 높은 것으로 파악된다.

<그림 5> 전반적인 해병대 이미지

 

 

 

  해병대에 대해 가지는 ‘부정적인 인상’을 파악했는데 그림처럼 ‘자신들끼리 뭉치는 경향이 커서 다른 군 출신과 거리를 둠’ 38.6%, ‘실질적인 군의 이미지보다 해병대라는 이미지가 부풀려짐’ 36.1% 등으로 나타났다.
<그림 6> 부정적 해병대 이미지

 


상기 응답들의 함의는 국민의 군으로서의 해병대를 위해 충분한 조건을 만족 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앞서 서론에서 논의 된 것처럼, 국민의 군, 국민에게 다가가는 군, 국민이 가장 신뢰하는 군이 되기 위해서는 ‘군’에 대한 국민의 동의를 얻어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이번 국민의식조사에서 나타난 해병대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은 해병대의 이미지를 비롯하여 지원병 제도, 군 정원조정과 방향 그리고 해병대의 위상 노력에 이르기까지 많은 문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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