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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韓國의 戰爭指導體制 發展方案
작성자 김현기 작성일2011-11-14 오전 10:2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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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의 戰爭指導體制 發展方案
 
 
目 次
 
Ⅰ. 序 論
Ⅱ. 戰爭指導의 理論的 考察
    1. 戰爭指導의 定義
    2. 戰爭指導 核心 要素
 
Ⅲ. 主要 戰爭指導 事例 分析
    1. 太平洋戰爭時 日本의 戰爭指導
    2. 越南戰時 美國의 戰爭指導
    3. 第3次 中東戰時 이스라엘의 戰爭指導
    4. 걸프전시 美國의 戰爭指導
    5. 事例分析 綜合 및 評價
 
Ⅳ. 主要 國家의 戰爭指導體制
    1. 美國의 戰爭指導
    2. 日本의 戰爭指導體制
    3. 英國의 戰爭指導體制
    4. 獨逸의 戰爭指導體制
    5. 戰爭 指導機構의 比較
 
Ⅴ. 韓國의 戰爭指導體制 發展方案
    1. 韓國의 戰爭指導 槪觀
    2. 韓國 戰爭指導體制의 問題點
    3. 韓國의 戰爭指導體制 發展方案
 
Ⅵ. 結 論
 
參考 文獻
 
 
Ⅰ. 序 論
 
1. 硏究 目的
人類의 궁극적인 目標는 자유롭고 부유하면서도 평화로운 삶을 영위하는 데 있으나, 이 어려운 目標를 達成하기 위해 지나치게 노력한 나머지 세계 도처에서 크고 작은 戰爭이 일어남으로써 인류 역사상 戰爭은 종식된 적이 없다. 오히려 “戰爭은 國家의 중대한 일이다. 國民의 生死와 國家의 存亡이 달려있으니 신중히 검토하지 않을 수 없다.(兵者國之大事 死生之地 存亡之道 不可不察也)”는 孫子의 가르침을 역사의 교훈으로 배우고 확인할 뿐이다.
이렇듯 戰爭은 인류역사를 통하여 계속되어 왔고, 자의건 타의건 간에 대부분의 국가가 戰爭을 直接 또는 間接的으로 경험하여 왔던 것이 사실이며, 어떤 國家가 실제로 戰爭을 수행하게 되었을 때 勝利의 결과에 관계없이 그 戰爭을 지도하였다는 것 또한 명백한 사실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즉 戰爭은 일단 억제되어야 하지만, 불가피하다면 國家의 保存과 國民의 生存을 위해 능률적인 戰爭수행이 요구되며, 능률적으로 戰爭을 수행한다는 것은 國力을 統合.調整.統制해서 戰爭目的을 달성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데, 그 방법이 바로 戰爭指導인 것이다. 특히 현대 戰爭은 國家의 전역량이 집중되는 양상으로 國家總力을 어떻게 유효 적절하게 통제, 운용하여 국민들의 희생을 최소화하면서 戰勝을 기할 것인가. 어떻게 국내외적인 支持와 支援을 획득하여 戰爭目的을 達成할 것인가. 등의 문제가 모든 사람들의 관심사가 되었다. 결국 總力戰에서 勝利하기 위해서는 軍事力 뿐만 아니라 政治, 經濟, 思想, 科學技術 등 전 국민의 역량과 자원을 결집하여 이를 올바르게 지도할 수 있는 체제가 확립되어야 하며, 가장 효과적으로 국력을 조직화하는 지도방법이 무엇인가를 연구해야 한다.
따라서 本 硏究의 目的은 戰爭指導의 本質을 이해하고, 주요 국의 戰爭指導 사례와 각국의 戰爭指導體制를 考察해 봄으로써 우리나라의 戰爭指導體制와 方法에 대한 發展方案을 導出하는 데 있다.
 
2. 硏究範圍 및 方法
오늘날 多變化되어 가는 國家戰略의 개념하에서 韓國的 特殊性을 고려할 때, 이에 부응하기 위한 戰爭指導體制를 어떻게 補完하고 編成, 發展시킬 것이가. 과거에는 戰爭 자체만을 지향했던 개념이지만, 오늘날에는 평시에 戰爭을 豫防하고 抑制하는 국가적 노력까지 요구하게 되었다. 따라서 平時와 有事時를 연계한 國家 戰爭指導體制에 대한 體系的인 分析과 보다 發展的 方案이 모색되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本 硏究報告書의 範圍는 戰爭指導에 대한 一般的인 理論을 考察하고, 太平洋 전쟁시 日本, 越南戰時 美國, 제3차 中東戰爭時 이스라엘, 걸프전시 美國 등의 戰爭指導 實事例를 분석하여 평가하고 또한 주요 國家의 戰爭指導體制를 檢討하여 韓國의 戰爭指導體制에 대한 發展方案을 提示하고자 한다.
硏究方法은 國內外 碩學들의 著書와 관련 論文 등을 參考하고 現實的인 韓國의 戰爭指導體制에 대한 問題點을 導出하여 보다 發展的인 方案을 提示하고자 하였다.
論文은 序論과 本論을 포함하여 6개 장으로 構成하였다. 제Ⅱ장에서는 戰爭指導의 理論的 考察을 槪觀하였고, 제Ⅲ장에서는 주요한 戰爭指導 사례를 분석하여 평가하였다. 제Ⅳ장에서는 주요국가의 戰爭指導體制 실태를 살펴보고, 제Ⅴ장에서 韓國의 戰爭指導體制 發展方案을 제시하였다.
 
 
Ⅱ. 戰爭指導의 理論的 考察
 
1. 戰爭指導의 定義
戰爭 指導라는 用語를 문헌상에서 최초로 명시한 사람은 日本의 이시하라(石原 莞爾) 대좌이다. 그는 1936년 6월에 개편된 參謀本部에서 戰爭指導와 정세판단을 주무로 하는 제2과장으로 근무하면서 “戰爭指導란 戰爭에 있어서의 國力의 운용을 가리키는 것이며, 戰爭 수행시의 무력의 행사(統帥)와 무력행사 이외의 사항(전시의 정치)의 양자를 조화시켜 戰爭目的을 達成하는 것으로서 政略과 戰略을 조화.통일시켜 전승을 획득하는 것이다”라고 정의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시 日本의 戰爭指導는 전적으로 政治와 軍事를 분리하여 大本營에서 장악하였다. 이 기구는 종전 및 전후처리를 하는 종전 외교에서도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동시에 日本의 大本營이라는 방대한 軍事編制는 실제에 있어서 천황의 직속하에 있었으며, 政府와 分離되어 있었다는 의미에서 극히 군사적인 범주에 속하는 戰爭指導의 모체였다고 할 수 있다.
戰爭指導라는 용어는 현대의 문민통제(Civilian Control)라는 관점에서 볼때, 일반적으로 西歐民主主義 國家에서는 별로 사용하지 않고 있으며, 日本을 비롯한 일부 국가에서만 制限的으로 사용하고 있는 데, 歐美의 군사학 이론체계에서는 戰爭指導에 관한 분야를 國家安全保障이나 軍事戰略의 범주에 포함시켜 취급하고 있을 뿐 별개의 것으로 취급하지 않고 있다
오늘날 日本에서는 戰爭指導란 “戰時에 있어서의 國力運用에 관한 지표인 바, 戰爭수행의 요강과 무력행사에 따르는 통수 및 軍事戰略과 政治戰略의 통합.조정과 효율 통제 등 戰爭目的을 達成하기 위하여 國家總力을 組織化하여 集中시키는 指導力量과 技術이다”라고 이해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戰爭指導라는 用語가 보편화 되고 체계화되지는 않았지만, 일반적으로 “戰爭指導란 전시에 있어서의 국력운용에 관한 지표로서 戰爭수행을 위한 要綱의 제정, 무력발동에 따르는 統帥權의 行使, 國家戰略과 軍事戰略의 통합. 조정 및 효율적인 통제 등 궁극적인 戰爭目的을 達成하기 위하여 國家 총역량을 전승획득에 집중시키도록 조직화하는 指導力量과 技術을 말한다”라고 이해되고 있다. 이는 國家目標를 達成하기 위하여 國力의 제요소를 통합하고 軍事力을 造成.維持.運用하는 廣義的인 戰爭計劃과 적의 武力侵攻에 대비하면서 敵國의 意志를 굴복시키기 위한 狹義的인 戰爭計劃 등에서 戰爭開始, 戰爭遂行 및 戰爭終結과 같은 戰爭 실행계획에 대하여 주된 指導 역량을 발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國家利益과 國家目標에 기준하여 새로운 정세판단과 戰略構想으로 戰爭目的이 확정되고, 이후에 확정된 戰爭目的을 達成하기 위한 戰爭指導 重點이 제정된다. 戰爭指導重點은 일정한 양식이 없다고 하더라도 국력요소별로 戰爭目的 達成에 전력을 다할 수 있는 指導重點이 戰爭準備期로부터 戰爭終結期까지 단계별로 명확히 설정되어야 하는 데, 이는 軍事統帥權의 行使와 政治, 外交, 經濟, 軍事分野에 대한 國力運用指針으로 作成한다. 따라서 戰爭指導의 槪念에는 國際的, 國內的 문제를 총괄하는 전반적인 政治, 外交, 經濟戰略 그리고 國家的 차원의 軍事戰略 분야에 있어서 상호 모순되는 부분을 戰爭目的에 부합되게 통합.조정하고 政府의 제기관을 유기적으로 협조시키는 目的이 포함되어 있다.
 
2. 戰爭指導의 核心要素
戰爭指導에 있어서 國家努力의 效率性을 제고시키기 위한 제반 國力의 효과적 사용을 위해서는 戰爭指導 適用시기에 따라 戰爭準備期로부터 戰爭終結時까지의 戰爭遂行 기간을 단계별로 구분하여 戰爭指導의 核心要素에 대한 指導重點을 適用해야 한다. 段階別 戰爭指導 重點은 戰爭수행에 있어서 國力統合과 戰爭目的의 達成을 위한 戰爭수행의 統制指針이라 할 수 있다.
 
가. 戰爭準備期의 指導重點
戰爭準備期에는 國家資源의 確保와 軍事力 조성, 戰爭目的의 설정, 同盟國의 確保 및 維持, 그리고 國際社會에서 敵國의 孤立化 등이 주요 指導事項이며, 그 細部 內容은 다음과 같다.
 
(1) 國家資源의 確保와 軍事力 造成
經濟力은 軍事力 조성 및 戰爭수행의 기본 요건이 된다. 經濟的 潛在力은 戰爭에 있어서 자신감과 戰爭持續 能力을 保障한다. 物的資源과 함께 人的資源도 考慮되어야 하며, 이러한 人的.物的資源은 軍事力의 基本要素이고, 이는 平時에 戰爭을 抑制하고, 有事時에는 戰勝을 保障하는 原動力이 된다.
軍事力은 國家利益 追求의 要求度, 즉 軍事力 所要와 國家能力의 한계를 고려하여 軍事力 水準을 결정해야 한다. 軍事力을 결정할 때에는 相對的 軍事力, 作戰地域의 特徵, 豫想되는 戰爭樣相, 武器體系, 實戰經驗과 訓練程度, 國家의 軍需支援 能力, 國民의 精神狀態 등을 고려하여 결정한다. 특히, 兵員의 결정은 國力에 무리가 없도록 신중을 기해야 하며, 物資의 備蓄 및 補充能力도 충분히 고려되어야 한다. 現代戰의 樣相은 兵員 및 軍需 物資의 대량소모를 요구하고 있으므로 物的資源의 動員과 國外로부터의 獲得政策이 확립되어야 하며, 戰時에 國民經濟의 生産力을 총동원하고 國外依存 物資의 獲得을 위해서는 강력한 政治 및 外交力으로 國民行動을 통일하고 타국으로부터의 戰爭支援態勢를 확립하는 적절한 시책이 추진되어야 한다.
 
(2) 戰爭目的의 確定
戰爭을 개시함에 있어서 먼저 戰爭目的을 명확하게 확정지어야 한다. 戰爭目的은 戰爭目標, 즉 安保, 生存, 信賴, 同盟國 確保, 死活的인 地域과 資源의 保護를 達成하는 것이며, 戰爭勝利 그 자체가 目的은 아니다. 그리고 戰爭目的은 國家目標로부터 도출되지만 實際 名分上의 측면과 實利的 측면이 함께 存在하며, 이를 모두 充足시켜야 한다. 名分上의 戰爭目的을 充足시킬 수 있는 要素로는 戰爭 그 자체를 자위적이며 정의의 戰爭임을 명백히 부각시키고 침략자를 응징 또는 규탄하려는 어쩔 수 없는 최후 조치로써, 窮極的으로 地域 및 世界平和에 기여한다는 조건에 합당해야 한다. 國家利益을 追求하기 위한 實利的인 戰爭目的은 國家政體를 확보함이 그 기본이며 政治, 外交 및 經濟的 實利를 획득할 수 있어야 한다.
 
(3) 同盟國의 確保와 維持
同盟國의 공고화는 自國의 國際的 地位 向上과 軍事力 補完, 그리고 戰時에 필요한 物資의 獲得源이 된다. 이것은 곧 國際社會에서 제반 교류증진을 통하여 敵性的인 國家를 감소시키고 不戰條約이나 不可侵條約 등을 締結하여 友邦國化에 重點을 두는 형태로 나타나며 外交 活動이 이의 要諦이다. 戰爭支援을 위한 友邦 및 同盟國의 支援形態는 財政支援과 直接 兵力投入 形態가 있으며, 軍事力 支援形態의 支援國家는 單一 指揮體制의 聯合作戰을 수행하는 것이 效果的이다.
 
(4) 國際社會에서 敵國의 孤立化를 위한 措置
戰爭準備期 이후는 政治 및 經濟面에서 敵國을 포위하여 國際社會에서 적의 孤立化에 주력해야 한다. 이의 주된 方法은 同盟의 강화 및 經濟封鎖 등이 있다. 특히 經濟封鎖는 敵國이 필요로 하는 食糧, 石油, 철강 등 戰略物資의 供給을 차단함으로써 敵國의 戰力과 國民의 士氣를 저하시켜 戰爭意志를 꺽을 수 있다. 이와 竝行하여 友邦國家와의 관계를 강화하고 敵國의 周邊國家와도 제휴하여 政治封鎖를 실시함으로써 國際舞臺에서 적을 孤立시키는 조치가 이루어져야 하며, 이와 같은 조치는 戰爭 全段階를 통하여 持續的으로 실시되어야 한다.
 
나. 戰爭遂行期의 指導重點
準備된 戰爭計劃 하에서도 戰爭이라는 最後의 手段을 택할 것인지, 아니면 平和的 方法으로 해결할 것인지의 決定은 國家 最高政策決定者의 判斷과 決斷에 의해서 좌우된다.
 
(1) 戰爭遂行 方法의 決定
開戰에 앞서 政治的 次元에서 결정되어야 할 戰爭遂行 方法의 內容은 다음과 같다.
첫째, 開戰時期의 決定은 적이 武力攻擊을 개시했을 때를 開戰으로 하는 것이 통상이며, 이때는 응징의 세력하에 있어야 하고, 戰略上 先制攻擊인 경우에는 侵略者로서 오명을 쓰지 않도록 해야 한다.
둘째, 戰爭規模의 예측이다. 戰爭規模의 예측은 그 正確性을 기하기 매우 어려운 문제이나 어느 정도의 規模로 할 것인가(예를 들면 서해 5도와 관련한 問題에 있어서 서해 5도에 국한한 局地紛爭으로 해결 할 것인지 아니면 全面戰으로 擴大할 것인지)를 判斷하고 예측해야만 제반 戰爭計劃을 竪立할 수 있다. 一般的으로 戰爭規模를 예측할 때에는 戰爭의 目的 및 國力의 限界, 國內外的인 與件, 적의 能力, 戰爭의 기간 및 速度, 武器體系의 性能과 運用能力 등을 고려하여 결정한다.
셋째, 政略과 戰略槪念이 合致되는 戰場의 선정과 進軍의 限界를 設定해야 한다. 특히 戰場의 選定은 적에게 決定的인 치명상을 주는 敵國의 首都, 工業 및 穀倉地代 등과 같은 要衝地를 지향해야 하며, 進軍의 限界는 사전에 明確하게 規制해 두어야 한다. 왜냐하면 軍事作戰이 개시된 후에는 戰爭의 상승작용 때문에 이를 용이하게 통제하기 어렵게 되어 무리한 확전으로 치닫게 되기가 쉽기 때문이다.
넷째. 戰爭指導機構의 整備이다. 現代戰은 規模가 甚大하고 복잡해져서 戰爭技術이 專門化되었고, 國家總力量은 政略과 戰略을 統合.調整함으로써 發揮되게 된다. 따라서 國力을 效率的으로 運用하기 위한 일정한 戰爭指導機構가 필요한 것이다. 戰爭指導機構는 國家元首를 首席으로 하고, 소수의 長官級과 軍事 및 安保分野 專門要員으로 構成되며, 平時에는 小規模로 유지하다가 戰爭準備期에 擴張되고, 戰爭遂行期에 補强되는 것이 보통이다.
다섯째, 講和條件의 예측이다. 사전에 講和條件을 결정하고 戰爭의 추세를 判斷하여 講和의 방향으로 戰爭을 종결하여야 한다. 이는 장래의 國家安全을 위한 國力을 무리하게 소모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2) 軍事作戰의 指導
軍事作戰의 指導는 作戰進行을 기준으로 段階別로 구분하여 指導한다. 먼저 戰爭 초기에 있어서 軍事作戰 指導는 결전의 基盤造成을 위한 유리한 地域에 部隊를 配置하고 展開하여 兵力의 集中 및 節約을 이루고, 敵部隊를 各個 擊破하며, 決戰의 有利한 時期를 造成하는 등 입체적인 作戰主導權을 確保하는 것이 指導重點이다.
決戰期에 있어서는 有利한 時期와 場所에서 決定的 戰鬪를 통하여 적의 戰鬪能力을 瓦解시켜 신속한 戰鬪終結을 이루어야 한다. 이때는 火力戰을 할 것인가 아니면 機動戰을 할 것인가, 攻擊할 것인가 아니면 防禦를 할 것인가 하는 것이 作戰指導의 주안이 된다.
終戰期에 있어서 軍事作戰의 指導는 적으로 하여금 아측의 요구에 굴복하도록 軍事的 壓力을 적절히 구사하여 和戰兩面의 外交的 勢力을 保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때 國內的으로 主和論과 主戰論이 양립되어있다고 하더라도 軍은 政府가 결정한 方向에 따라 軍事作戰을 수행해야 한다. 軍事作戰은 준비된 戰爭計劃에 따라 수행되지만 戰爭에는 너무도 많은 우연과 예측하지 못한 要素가 作用하여 計劃대로 進行되지는 않기 때문에 軍事作戰을 指導함에 있어서는 國家戰略에 부합되는 作戰이 수행되도록 그 目標選定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그리고 戰爭指導者는 때로는 軍最高司令官 位置에서 절묘한 指導力을 發揮하기도 하고, 때로는 國家元首로서 모든 責任을 지고 오로지 戰勝을 위한 國家總力을 集中시킬 수 있어야 하지만, 國家元首 자신이 直接 軍事作戰에 개입하여 軍을 좌지우지해서는 안된다. 軍作戰은 어디까지나 軍司令官의 意見을 존중하여 처리하는 것이 原則이다.
 
(3) 思想指導 및 對敵 心理戰
戰爭 狀況下에서는 普遍的인 人間의 價値와 道德, 規範이 이탈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장기화된 戰爭 狀況下에서는 厭戰思想이 발생하여 戰爭持續의 情神的 基底가 와해될 수 있다. 이를 指導함에 있어서는 祖國에 대한 愛國心과 희망을 주는 시책하에 國民의 生活安定, 불평불만 요인 제거, 兵役義務의 공평 등을 추구해야 하며, 國民에게 빈축을 하는 행위는 일체 엄단해야 한다. 이러한 國民 精神武裝은 敵에 대한 抵抗 및 憎惡心을 갖게 하고 必勝의 信念을 堅持하게 한다.
한편 敵의 國民과 兵員을 對象으로 對敵 心理戰을 수행하게 되는데, 敵國民에 대해서는 敵國 內部의 混亂, 戰意喪失, 指導者와 國民間의 이간공작을, 敵 兵員에 대해서는 敵 內部의 葛藤, 矛盾 등을 홍보하여 敵의 團結을 破壞하고 士氣를 低下시키며, 敵軍의 敗戰狀況을 效果的으로 선전하는데 주안을 두어야 한다.
이와 같은 對敵 心理戰의 手段으로는 思想 注入, 宣傳, 一般國民의 組織化, 謀略 등이 있으며, 이들은 適用하려는 國家의 社會的, 宗敎的, 人種的 背景과 態度, 偏見, 民族主義, 言語 등에 영향을 받는다.
 
(4) 國內政治 및 外交 指導
戰時에는 國內的으로 戰時行政特別法 등 强力한 施策이 수행되며, 國民의 權利가 留保된다. 그러나 憲法上 保障된 國民의 自由權은 可及的 尊重하고 盲目的인 統制나 拘束力을 행사함은 자제되어야 한다. 戰時 治安의 確保는 戒嚴令 宣布 등의 强力한 조치를 통하여 各種 通信手段의 統制, 言論과 매스컴의 엄격한 檢閱, 間諜 및 反國家敵 行爲者의 索出 및 監視, 外國人 活動의 規制 强化 등이 필요하게 되는데 이와 같은 戰線 後方地域의 安定은 戰線地域의 勝利를 保障한다. 그리고 軍事部門의 物資所要를 충족시켜 주고 民需所要를 保障하는 戰爭物資의 動員 우선순위는 軍需所要에 있으나, 戰爭遂行의 밑바탕을 이루는 民需所要도 看過해서는 안된다.
한편 戰時에 있어서 外交란 敵國, 中立國 및 同盟國을 대상으로 하며, 國際社會에서 自國의 支持勢力을 확장하고 友邦 및 同盟國으로부터 精神的, 物質的 支援을 획득하는 데 역점을 두어야 한다.
戰時 外交란 상호지원 및 利益配分과 權利尊重을 전제로 友邦國과의 持續的 관계유지 강화와 중립국의 敵性化 防止 및 敵國의 孤立을 그 주안으로 해야 하며, 强大國의 이해에 의해 약소국의 이익이 희생당하는 歷史的 外交處理 결과를 염두에 두어 國家間의 협력에 기반을 둔 自主性 있는 外交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戰爭을 수행하는 중이라도 戰爭 당사국간에는 통상 間接的인 의사소통의 통로를 유지해야 하며, 항상 敵의 動向 및 能力을 探知하여 軍事的인 適切한 壓力과 함께 國際社會에서의 고립화를 강화하여 適切한 시기에 敵으로 하여금 강화에 수락하도록 해야 한다.
 
다. 戰爭 終結期의 指導重點
終戰의 指導는 戰爭目的의 達成度를 基準하여 정세가 유리한 경우와 불리한 경우로 구분하여 指導한다. 유리한 경우는 과욕으로 戰爭範疇를 확대하려는 경향 때문에, 불리한 경우에는 一時的 굴욕 등으로 冷情한 判斷의 결여 때문에 國家滅亡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 따라서 戰爭目的을 기준으로 냉철한 판단과 자제로 國家目的과 國體保存의 基本命題에서 이탈되지 않는 능숙한 指導力量과 指導者의 절제가 요구된다.
終戰의 時期는 戰爭目的이 達成되었거나, 敵의 저항능력이 소모되었거나, 국민의 過勞한 疲勞와 厭戰思想의 蔓延 등으로 國民生活이 극도로 혼란시나, 國際的 利益關係과 當事國 공히 불리한 경우 등이 종전의 호기로써 이러한 기회를 놓치지 않고 戰爭終結을 서둘러야 한다. 終戰의 時期와 함께 方法을 결정해야 하는 데, 終戰의 方法은 平和條約을 締結하거나 정복에 의한 合倂으로 구분된다. 이는 그 상태에 따라 無條件降伏, 條件附降伏, 相互諒解와 妥協의 終結形態 등이 있는 데, 終結은 조기에 명예로운 平和의 名分을 찾아서 하도록 해야 한다.
平和條約이 成立되면 休戰의 狀態로서 停戰의 時期, 境界線, 軍隊의 撤收, 休戰監視, 捕虜의 交換 등을 協議한다. 終戰時 平和條約 締結이라는 講和段階로의 이행은 쉽지 않다. 통상 平和條約에 앞서 豫備的 性格의 기본조약 등을 정하기도 한다.
한편 講和指導의 기준은 戰爭目的의 達成度, 彼我間의 國力과 戰爭遂行 能力, 國內外의 輿論 등 제조건을 판단하여 講和指導가 이루어 져야 한다. 강화의 절차는 軍의 戰爭遂行 能力 限界를 예측하고, 戰局의 귀추를 分析, 檢討하여 강화에 대한 건의를 받아 政府는 이를 기초로 國內外의 情勢를 판단하여 外交交涉에 나서는 것이 通常的인 節次이다.
 
 
Ⅲ. 主要 戰爭指導 事例 分析
 
1. 太平洋戰爭時 日本의 戰爭指導
 
가. 戰爭目的과 軍事目標
太平洋戰爭에서 일본의 戰爭目的은 「帝國國策遂行要領」에 명시된 것처럼 일본의 自尊自衛를 수행하고 대동아의 신질서를 건설하는데 있었다. 이러한 두가지의 목적중 중점은 自尊自衛이며, 신질서 건설은 작전의 결과로 얻어지는 종속적.결과적인 것으로, 양자는 표리의 관계에 있다. 즉 指導者들간에 견해가 일치되지 않아서 천황이나 해군은 自尊自衛에 중점을 두었으나, 政府나 육군은 신질서 건설에 큰 비중을 두고 있었다.
군사목표인 무력을 행사하여 공략하는 범위와 공략순서는 남방자원지대를 공략하여 戰爭의 장기 지구전에 대비하고 정전략과 군사전략상의 長期不敗態勢를 확립하는 것이 목표였다. 육군부의 作戰計劃은 남방지역을 주체로 “東亞에 있어서의 미국, 영국에 이어 네덜란드의 주요 근거지를 제거하여 남방의 중요지역을 점령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大本營의 기본計劃과 이에 따른 군의 作戰計劃으로 구성되었다. 해군부는 “신속히 남방 주요지역을 점령.확보하고 地區不敗의 태세를 확보하며, 이 사이에 敵 함대가 공격하면 추격.격멸하고 敵의 戰意를 분쇄한다”는 작전지침을 計劃하였다. 이에 따른 군사행동은 개전과 동시에 화와이, 괌, 홍콩, 말레이지아, 필리핀 등 모든 방향에 동시에 공격하는 遠心攻擊을 취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戰爭目的과 군사목표는 당시 일본의 國家利益을 달성하는 수단으로는 무리한 것이었다. 대동아 신질서 확립이라는 목적에 부합하기 위해 對美.英.蘭의 연합국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당시 일본과 연합국의 엄청난 국력의 차이 때문에 실현 불가능한 것이었으며, 군사목표 선정도 지형목표를 중심으로 선정되었을 뿐, 敵 주력과 敵 의지를 박탈하려는 목표선정이 되지 못하였다.
 
나. 基本 軍事戰略 槪念과 戰爭指導
(1) 開戰方法
太平洋戰爭에서 일본이 선택한 개전방법은 奇襲攻擊이었다. 이는 일본이 남방자원지대를 확보하는 데 방해가 되는 미국의 전투력 제거와 주변 방어선을 구축할 수 있는 시간을 얻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일본은 표면적으로는 戰爭開始 방법상 필수적인 奇襲攻擊과 宣戰布告를 동시에 수행하여 나름대로 효과적인 開戰方法을 택하였다.
그러나 일본의 진주만 기습은 전략적 실패의 대표적인 개전방법으로 인식되고 있는 데, 이는 당시 격렬하게 여론이 분열되어 반전과 타국 불간섭의 여론이 강했던 미국에게 일치단결을 강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태평양함대 분쇄는 거대한 국력을 감안하였을 때 극히 일부에 불과한 물질력을 파괴한 반면에 정신력과 조직력을 극대화 시키는 자극제가 되어 기습공격이 戰術的으로는 성공하였으나 戰略的으로는 실패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선전포고도 본래의 目的과 의의를 상실하였다. 일본 천황은 기습공격 시간보다 25분전인 美 동부시간으로 12월 7일 오후1시에 선전포고를 전달하도록 타전하였으나, 公式的으로 전달된 시간은 오후 2시 20분으로 당시 일본의 노무라 대사는 미 국방장관실에 일본의 최후통첩을 전달하면서 “오후 1시 정각에 전달하도록 훈령을 받았지만 암호를 해독 정서하기 위해 시간이 걸려 늦었다”고 사과하면서 해명하였다. 이는 일본 천황이 희망하고 있던 「개전전의 정식통고」計劃을 망쳤으며, 더구나 전세계적으로 「속임수 공격」이라고 인정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太平洋戰爭時 일본의 개전방법은 개전과 동시에 미국의 전력을 증대시킨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2) 戰鬪力 運用
일본의 戰爭基本計劃은 3단계로 구분하였다.
제1단계는 전략적 공세단계로써 미 태평양함대의 무력화와 극동의 고립된 연합군을 격멸하고, 남방자원지대 및 일본 본토방어에 필요한 전략적 외곽지대의 점령이고, 제2단계는 주변 방어선의 강화단계로써 천도열도, 웨이크 마샬군도, 길버트군도, 비스마르크군도, 북부 튜우기니아, 티몰도, 쟈바, 수마트라, 버어마를 연하는 선상에 요쇄화된 전략적 기지를 건설하여 주변 방어선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제3단계는 주변 방어선의 침투를 기도하는 모든 敵軍을 저지, 격멸하고 主敵인 미국의 戰意를 분쇄하기 위하여 積極的인 소모전을 실시하는 것이었다. 이는 長期持久戰을 전개하여 미국을 협상테이블로 이끌어 일본의 점령지역을 인정받으려는 戰略的 計劃이었으나, 미국의 전투력 운용의 한계를 설정하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본의 지속능력의 한계까지 버티겠다는 개념으로 일본측으로서는 미국의 전투력 한계를 강요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 戰爭을 개시한 실수를 범한 것이다.
전투력의 규모면에서도 1941년 12월 7일 일본은 240만의 정규군과 300만의 예비군, 7,500대의 항공기와 주력함선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600만톤 규모의 수송선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었다. 반면에 미국은 병력 150만, 항공기 1,157대, 전투함 347척, 수송함 총 1,000만톤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이미 시행중인 “先 獨逸”정책 때문에 대부분의 戰爭物資를 유럽방면으로 유출한 관계로 전반적인 군비는 만족할 만한 것이 못되었다. 그러나 일본은 미국의 戰爭 잠재력을 무시하고 현재의 전투력 만 믿고 무모하게 개전하는 우를 범하였다.
 
(3) 戰爭終結 方法
美國은 戰爭을 終結짓기 위한 모종의 計劃을 추진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원자폭탄의 제조였다. 美國은 1945년 7월 16일 뉴유멕시코 사막의 알라모고르도에서 원자폭탄 實驗에 成功하였으며, 日本政府가 7월 26일 포츠담선언을 거부하자 이의 使用을 決心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8월 6일에 히로시마, 8월 9일에는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어 엄청난 人命被害와 産業施設의 45%가 破壞되었다. 급기야 日本政府는 8월 10일에 포츠담선언에 준한 平和協商을 요망하기에 이르렀고, 8월 15일에 天皇의 무조건 降伏으로 太平洋 戰爭은 3년 8개월만에 終結되었다. 日本政府는 戰爭終結에 대한 對外的인 名分보다 天皇의 입지를 지키기 위한 쓸데없는 고집으로 수 많은 市民을 犧牲기키고, 아무런 外交的 노력도 할 수 없는 戰犯者로서의 오명만 가지고 戰爭을 終結하엿다.
 
(4) 時間要素의 活用方法(開戰時期와 戰爭持續期間)
日本이 선정한 戰爭시기는 美國側의 軍事力과 비교하여 가장 유리한 시점을 선택했다. 즉 中日戰爭 준비와 1936부터 戰爭준비를 해온 日本(특히 해군측에서)은 1941년 後半期와 1942년 前半期를 相對的인 戰力과 準備態勢가 最高潮에 달하는 시기라고 보았다. 1941년 가을까지의 太平洋에서 日本과 西方國家의 海軍力은 다음 〈도표 3-1〉과 같다.
 

資料 : 國防大學院 譯,「戰略的 奇襲」(서울 : 국방대학원, 1986), p. 58.
 
또한 戰爭時期는 액체연료의 수급문제와 통수부의 작전요구를 중시하여 결정하였다. 즉 1942년(昭和 17년) 3월 이후가 액체연료의 보유량에 여유가 없어서 美.日의 軍備 比率이 현격히 커지고 美.英.蘭의 공동방위 관계가 보다 강화되므로 개전은 빠른 것이 유리하며, 소련이 대일전에 나올 경우 二正面 作戰을 피하기 위하여 북방작전이 不適合한 동계간에 남방작전을 종결해야 했다. 또한 진주만 공격을 위한 해양상황과 상륙작전을 위한「말레이」근해의 풍파로 보아 1, 2월은 不適合하다는 이유 등으로 통수부가 주장하는 戰略的 선제효과를 최대한으로 거두기 위하여 12월 초순으로 결정하였다. 이는 季節的으로 초겨울로써 높은 파고의 가능성에 의한 해상작전의 취약성을 역 이용한 것이며, 요일로는 월요일 아침 07시 55분으로 일요일의 이완된 준비태세를 이용하였다
또한 戰爭持續期間面에서 육.해군 모두의 戰爭 전망는 長期持久戰을 피할 수 없으며, 美國을 굴복시키는 일은 곤란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해군 수뇌는 개전후 2년 동안에 대해서는 승리를 확신하지만, 그 후의 장기전에 대해서는 예상할 수 없다고 고백하였다. 다만 육.해군 모두 美.英聯合의 약점은 英國에 있다고 생각하였다. 즉 英國은 해상교통이 두절되고 獨逸이 영국본토에 상륙하면 굴복할 것이고, 결국 美國의 戰爭意志의 포기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戰爭持續期間은 日本이 한계로 정한 2년 보다 장기간인 약 4년간이나 지속되었고, 더구나 유럽 전선에서도 독일은 패배하고 말았던 점을 고려할 때 日本은 지속기간의 한계를 스스로 강요당하면서 戰爭을 치루어야 했다.
 
(5) 空間要素의 活用方法
太平洋戰爭에서 日本이 선정한 主戰場은 크게 두군데로 볼 수 있는데, 하나는 해군에 의해 미 태평양함대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화와이 진주만을 기습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석유자원을 포함한 戰爭物資를 획득하기 위하여 남방지대를 점령하는 것이다. 전장의 범위는 「大東亞共榮圈」의 전 지역으로, 최전선은 북으로 지시마열도.웨이크섬.마샬제도.길버트제도.비스마르크제도.뉴기아섬을, 남으로는 티모르섬.쟈바섬.수마트라섬.보르네오섬을 연결하는 선으로 선정하였다.
이는 주전장과 전장의 범위 선정에서 필수 고려요소인 핵심지역의 확보라는 측면에 부적합한 것으로, 日本이 太平洋 戰爭을 일으킨 目的이 大東亞共榮圈의 수호이고, 기본 작전計劃이 美國에게 승리할 수 없으며, 長期持久戰이 불가피하다는 판단하에 수립되었다면 당연히 진주만보다는 美國이 태평양을 건너 반격시 전초기지로 활용할 수 밖에 없는 하와이와 미드웨이를 日本의 해군기지로 운용하거나 완전 무력화시켜야 했다. 만약 이것이 불가능하다면 日本의 大東亞共榮圈이라는 목표가 과대한 것으로 볼수 밖에 없으며, 당시 日本은 中日戰爭도 종결짓지 못한 상태에서 太平洋 戰爭을 개시한 자체가 그 범위를 과도하게 선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2. 越南戰時 美國의 戰爭指導
 
가. 戰爭目的과 軍事目標
美國의 월남전 개입 目的은 공산주의자들의 전복활동과 외부침략을 방어하여 독립된 비공산 政府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具體的으로 美國은 월남戰爭의 개입을 통하여 반침략의 보호자로 명성을 지키고, 동남아의 도미노 효과를 저지하며, 월남을 지킨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월남전이 장기화되자 美國의 굴욕적인 패배를 저지하고, 남부월남을 중공의 침략에서 보호하며, 남부월남 국민에게 자유생활을 보장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美國이 월남전에서 주월 미군사령부에 부여한 목표는 월남 政府를 지원하여 외부의 지령과 지원을 받는 공산주의자들의 전복활동과 침략을 격퇴시키고 독립된 월남 政府를 세우는 것이었다. 그러나 美國이 선정한 군사목표는 “미군의 목표가 敵을 소모시키는 것이 아니라 주민을 최대한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한 키신저의 말처럼 敵의 저항력을 박탈하는 문제나 戰爭수행의 핵심요소를 마비시키는 목표와는 거리가 멀었다.
 
나. 基本 軍事戰略 槪念과 戰爭指導
(1) 開戰方法
美國側의 관점에서 越南戰爭의 개입은 기습에 의한 敵 전투력의 분쇄를 달성하지 못하였으며, 선전포고도 하지 않아 국민의 의지를 결집하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군과 민을 분열시킨 戰爭이었다. 따라서 戰爭開始에 必須的으로 확보해야 할 주도권 장악의 기본요건을 확보하지 못하고 우수한 물질력만을 가진 개전방법이었으므로 戰爭失敗의 주요 원인을 제공하게 되었다.
 
(2) 戰鬪力 運用
월남전에서 美國이 취한 전력운용 방법은 한계성 범위에서 敵 전투력의 한계성을 넘는 측면과 무관하게 운용되었다. 즉 主敵인 월맹의 전투력 한계를 강요하기 위한 전력 중심점에 집중해야 하나, 오히려 월맹의 위장된 게릴라에게 전력을 집중운용하여 주도권을 넘겨주는 실수를 범하였다.
美國은 핵무기와 잠수함을 제외한 모든 병기를 투입해 제2차 대전중 越南이 사용한 양을 능가하는 폭탄을 투입하고도 越盟의 조국통일의 결의를 무너뜨리지 못했다. 越盟은 모든 면에서 美國에 비해 전투력이 열세하였지만, 오직 조국통일의 精神的인 의지만으로 끈질기게 게릴라전을 전개하여 목표를 달성하였다. 美國의 戰爭物資가 越盟의 精神力에 敗北한 것이다.
 
(3) 戰爭終結 方法
美國은 越盟과의 휴전협상을 통하여 월남전에서 손을 뗄 수 있는 명분을 찾고자 했다. 이것은 反戰與論이 심화되어 대통령의 재선에 위협을 느꼈던 닉슨(Nixon) 대통령에게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였다. 닉슨은 再選公約에 따라, 그리고 1972년도 재선을 위해 재선 이전까지 미군철수와 휴전협상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사간표에 따라 미군철수를 강행하였고, 그 결과 휴전협상에서도 양보를 거듭해야만 하였다.
마침내 1973년 1월 파리에서 平和協定을 정식으로 조인하게 되는데, 이 협정에는 美軍과 自由友邦軍의 철수만 명시되어 있을 뿐 越盟軍의 철수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었다.
이는 110만명의 병력을 가진 월남군이 당시 월남지역내에 있을 것으로 알려진 15만명의 월맹군을 겁낼 필요가 없다는 논리에서 기인된 것이었다.
결국 파리협정은 문서상으로는 越南戰爭을 종식시켰으나 실제는 환상에 불과한 평화협정이었다. 월남에 美國이 있는 한 武力赤化統一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인식하고 있었던 越盟으로서는 이 협정은 단지 美軍 撤收의 명분을 주는 문서에 불과했다.
 
(4) 時間要素의 活用 方法(開戰時期와 戰爭 持續期間)
월남전에서 美國의 개입은 프랑스의 식민지에서 베트민의 식민지 解放戰爭과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戰爭開始 보다는 개입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美國의 월남전 공식 개입은 1954년 2월 12일부터 美國의 군사고문단 규모가 증강되어 프랑스군을 대신하여 월남군을 指導, 육성하는 임무를 수행하면서 본격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1952년 6월 美國의 國家安保會議 문서(NSC-124/2)에 “동남아시아 國家들의 공산 위성국화 방지”라는 美國의 월남전 개입 공식목표가 등장하였고, 케네디 대통령 등장 이후에도 아이젠하워 대통령 시절의 “월남에 友好的인 비공산정권을 지원하여 이를 유지한다”라는 정책은 변함이 없었다. 또한 전략개념이 ‘大量報復戰略’에서 ‘柔軟反應戰略’으로 변화되어 국지분쟁에 대한 美國의 기본자세의 변화 등 제반여건이 변화되어 월남에 대한 개입이 가속화 되었다. 이에 따라 1964년 8월 2일 통킹만사건 이후 1964년말의 월맹정규군의 월남투입에 대응하여 1964년 12월 1일 및 1965년 2월 13일에 각각 존슨 대통령에 의해 北暴이 승인되었고, 1965년 4월 20일 호노룰루에서 본격적인 미 지상군이 개입하여 축차적인 美國의 월남전 개입이 실시되었다.
이와 같은 절차를 거친 美國의 월남전 개입은 상황변화에 따라 축차적인 개입의 형식을 거침으로써 유리한 시기라든지 기습을 위한 效果的인 시기와는 무관하였다.
또한 戰爭 지속기간면에서도 美國은 戰爭期間을 선정하지 않고 끝없는 소모전에 말려들어 效果的인 戰略計劃이 없이 戰爭에 임했고, 결국 18년의 긴 세월 끝에 美國式 .손빼기 방법.(American way of good-bye)으로 철수하게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월남은 월맹에게 함락되었다.
 
(5) 空間要素의 活用方法
美國의 월남전 개입은 비정규전 형태로 시작되어 主敵을 월맹군이 아닌 베트콩으로 선정함에 따라 주전장도 베트콩의 활동지역인 후방지역으로 선정하고, 월남전이 확대되는 것을 우려하여 북위 17도선 이북의 북진을 금지하였다. 美 지상군이 북진하면 월맹군은 중공에게 지원을 요청하여 중공군이 개입할 것을 우려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美國은 라오스와 캄보디아로 작전지역을 확대하지 않았다. 美國이 라오스와 캄보디아로 작전지역을 확대하지 못한 이유는 제네바협정에 따라 라오스의 中立을 존중해야 했고, 캄보디아는 베트콩의 존재를 否認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美國은 北暴의 목표를 제한하고 中越 國境地帶의 嚴守, 하이퐁항의 不封鎖, 해군함정의 행동반경 설정(북위 30°이남) 등의 작전지역을 제한하였다.
반면에 베트콩과 월맹 정규군은 라오스와 캄보디아 국경지대의 소위 ‘호지명 루트’를 이용하여 월남으로 침투할 수 있었으며 전장을 어느 일정 지역으로 고정시키지 않고 수시로 변화시켰다. 즉 美國은 戰爭을 월남 영토내의 지상전으로 제한함으로써 戰爭遂行의 基本的인 과오를 범하게 된 것이다.
 
3. 제3차 中東戰時 이스라엘의 戰爭指導
 
가. 戰爭目的과 軍事目標
제3차 中東戰爭에서 이스라엘의 戰爭目的은 아랍의 위협으로 부터 國家의 生存을 保障하기 위한 國家防衛에 있었다. 그리고 軍事目標는 이스라엘을 직접 위협하는 敵 軍事力과 그들의 戰略的 취약점인 地理的 불리점을 보완하기 위해 緩衝地帶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시나이 반도내에 위치하고 있는 요르단과 시리아 야전군을 격멸하여 「샤롬 엘 세이크」를 포함한 시나이반도와 예루살렘, 웨스트 뱅크 그리고 골란고원을 확보하고자 하였다.
이스라엘이 선정한 軍事目標의 핵심은 戰爭수행 기능면에서 敵 부대와 敵 지형에 중점을 두었다. 주변 아랍국과는 잠재역량의 압도적 열세로 위협제거가 불가능하였으므로 급박하게 닥친 위협인 敵 주력의 격멸과 방어종심 확보는 중요한 당면과제였다. 이러한 측면에서 敵 부대와의 공방에 있어서 현저한 이익을 주는 국경의 주요 전략요충지를 목표로 선정한 것은 매우 效果的이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目標를 敵意志의 重心點인 아랍측의 수도로 선정하지 않은 것은 강대국의 개입으로 확전의 가능성이 있을 뿐 아니라 軍事力의 政治目的 이상의 사용이며, 장기전의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 基本 軍事戰略 槪念과 戰爭指導
(1) 開戰方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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