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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해병대전략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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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한국의 억제전략개념과 해병대 임무역할 기능 정립방안(II)
작성자 김현기 작성일2011-11-11 오전 9:3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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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장 미래 전장에서의 해병대 역할
 
제 1 절 국가 안보전략과 한ㆍ미 동맹
 
 1. 한ㆍ미 동맹관계의 형성과 상호인식
한ㆍ미 동맹관계에 관한 대부분의 연구들을 후견-피 후견모델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이들 연구들은 한ㆍ미 동맹이 비대칭적인 의존관계를 바탕으로 이루어졌고 이러한 유형의 동맹관계 설정은 1953년의 당시 상황으로 볼 때 불가피 또는 당연한 결과라는 인식을 대체로 공유하고 있다.
 
미국이 한국에 대해 군사적 이해를 갖기 시작한 것은 1945년에서 1949년 사이로 평가된다. 그러나 이 시기에는 미국의 관심이 한국의 생존을 보장해 줄 안보장치를 구상할 만큼의 수준에는 도달하지 못했고 한국전쟁을 경험하고서야 비로소 강력한 군사관계가 형성되었다.
 
한국전의 발발로 미 8군이 한반도에 배치되게 되면서부터 한국과 미국간의 군사협력관계는 보다 밀접하게 자리 잡게 되었으며 그것의 구체적 결과물이 바로 양국간의 상호방위조약이었다. 한ㆍ미 상호방위조약의 체결문제는 최초 이승만 대통령이 1953년 5월 30일의 서한에서 상호방위조약의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시작되었다. 이에 대해 아이젠하워(Dwight D. Eisenhower) 대통령은 6월 9일의 답신에서 미국과 필리핀,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와의 조약을 기초로 한 상호방위조약을 협상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의사를 전달하였다. 이후, 1953년 7월 로버트슨(Walter S. Robertson) 국무차관의 서울방문 동안 양국 간에 협상의 첫 단계가 시작되어 1953년 10월 1일 워싱턴에서 조약이 조인되고 1954년 11월 17일 비준서가 교환되면서 마무리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양국 간 군사협력관계의 구축은 기본적으로 한국이 지니는 본질적 가치에 대한 판단을 근거로 하기보다는 국제적인 차원의 냉전구도 속에서 한국이 갖는 파생적인 가치에 대한 고려를 기초로 하고 있었다. 따라서 동북아의 약소국이었던 한국과 자유진영의 안보 보장자이자 초강대국인 미국사이에는 상호방위조약을 통해 양자간 군사협력의 틀이 마련되었다고 하더라도 서로가 서로에게 갖는 의미는 결코 동일한 것이 될 수 없었다.
 
동맹의 파트너로서 미국은 한국의 생존을 보장해주는 동시에 한반도에서의 합법적 정부로서의 국제적 위상확립과 같은 보다 직접적으로 한국의 생존과 복지에 있어 절대적 위치를 차지했다. 그러나 미국에게 있어서 한국은 공산주의의 팽창을 저지하려는 미국의 세계전략 또는 지역전략의 의미 속에서만 제한적으로 가치가 인정되고 있었다. 결국 이러한 인식의 불균형성이 동맹 간의 상대적 영향력에 투영되었고 이 영향력이 적용되고 반응하는 방법에 따라 양국간에 긴장과 불화를 가져왔으며 한국에게 중대한 결과를 가져올 일을 미국은 종종 일방적으로 결정하곤 하였다.
 
왜냐하면 당시의 한ㆍ미 관계는 미국의 대소봉쇄전략을 기반으로 설정된 것이었다. 따라서 한국은 미국의 독립적 외교정책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전체적 범주 속의 한 부분에 불과했으므로 한ㆍ미 관계는 미국의 냉전정책의 맥락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전략적 가치인식에 좌우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냉전의 상황에서 미국이 한국에 대해 갖는 국가이익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요소로부터 파생되고 있었다.
 
첫째는, 미국이 한국전에 파병하게 됨으로써 한국방위에 관여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의 공약수행의 실패는 미국의 동맹국들에게 신뢰감을 저하시킨다는 것이다.
둘째는, 한국의 전략적ㆍ지리적 위치를 놓고 볼 때, 미군의 철수나 미국의 대 한국 방위공약 이행의 실패는 동북아의 세력균형에 영향을 미칠 것이며, 이는 곧 다른 강대국 관계 및 전 세계적 차원의 세력균형에 해로운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서 미국이 한국에 대해 갖는 국가이익의 대부분은 한국에 대한 미국의 군사개입으로부터 시작되었으며 한국의 전략적 위치와 관련되어 있었던 것이다.
 
냉전시기의 한국의 가치에 대한 미 국방부의 공식적 평가도 이와 같은 군사전략적 중요성을 반영하고 있었다. 미 국방부는 한국을 아시아 본토에 있어서 미국의 가장 안전한 거점으로 동북아시아 방위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하였다. 따라서 한국은 본래적인 가치 이외에도 공산주의의 직접적 무력공격에 대항해 싸우겠다는 결의의 상징으로서의 지위를 갖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은 군사전략적 측면에서 미국의 타격부대에 대한, 기지 및 통행권을 확보시켜 줌으로써 미국과 다른 동맹국들의 안보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또한 예상되는 중국의 행위들을 고려해 볼 때, 한국의 중요성은 미국의 전진배치 개념 측면에서 더욱 의미를 갖게 된다고 주장하였다. 결국 한국은 지리적 위치, 성공적인 미국과 UN 방위의 상징으로서의 지위, 그리고 군사력 때문에 중요성을 지닌다고 보았고 한국은 동북아시아의 방위기지를 대표한다고 평가하고 있었다.
 
사실상, 미국은 한국전쟁을 통해서 한국 안보의 유일하고 가장 중요한 보호자이자 전쟁으로 폐허가 된 국토에 요구되는 각종 지원의 원천이 되었다. 특히 전쟁직후의 상황에서 한국은 미국의 세계정책의 작은 부분에 불과했고 미국과의 연계는 한국 대외정책의 거의 모든 것을 차지했는데 미국의 한국에 대한 이해는 대부분 공산주의 팽창을 봉쇄하려는 노력으로부터 파생된 것이었다. 즉 미국에게 있어서 한국은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 특히 일본 안보에 대한 고려와 아시아ㆍ태평양지역에서의 미국의 이해를 반영한 것이었다. 그러나 한국에게는 미국이 없다면 한국의 생존과 번영은 거의 확보될 수 없는 것이었으므로 양국 간의 관계는 본질적으로 비대칭적 특성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한국과 미국간의 관계는 인식, 목적, 능력과 상대방에 대한 영향력에 있어서 심대한 비대칭성을 특징으로 하고 있었고 미국이 동맹관계를 수립한 주요 목적이 소련과 중공세력을 견제하는 것이었다면, 한국의 유일한 목적은 북한의 침략을 막고 가능하다면, 한국의 북쪽 반에 대한 통제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한국은 미국의 세계적 관심의 부분에 불과했고 한국에게 있어서 세계의 상황은 자신의 안보와의 관련성 때문에 중요한 것이었다. 한ㆍ미 관계는 상호적 이라기보다는 일방적 지원과 영향력의 관계였으며 한국에게 있어서 미국은 시혜의 제공자였고 한국은 단지 수혜자에 불과했는데 이러한 일방적 관계의 특성이 동맹국의 상대적 영향력에 반영되고 있었다.
 
한편 현실적인 측면에서 볼 때도 당시의 한국은 경제적으로 낙후된 약소국이었다. 따라서 자국의 힘만으로는 공산주의 국가들로부터 제기되는 압도적인 위협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출 수 없었다. 그러므로 자국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한국의 대미의존은 이러한 정황에서 볼 때 불가피한 일이었으며 그것은 선택의 문제라기보다 생존을 위한 요구였다. 즉, 한국은 미국의 지원이 없다면 자국의 정치적 독립조차 보장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2. 한ㆍ미 동맹관계의 특성
앞에서 살펴본 양국간 상호의존성의 비대칭성으로 말미암아 한ㆍ미 동맹관계는 그 출발점에 있어서부터 일방적인 미국 주도의 동맹 체제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러한 동맹체제 속에서의 한국의 상대적인 지위는 미국이 통제하는 범위 내에서 행동하는 것으로 제한 될 수밖에 없었고 동맹의 특성 자체를 변화시키기 위한 어떠한 노력도 그 의지를 뒷받침해 줄 실제적 영향력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였다.
 
결국, 한ㆍ미간 동맹관계의 구축은 한국에게는 현실적으로 가장 확실한 안보 보장책이 되어주었지만 한편으로는 양국 간의 힘과 전략적 시각의 차이, 그리고 전쟁의 경험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기초로 하여 군사협력관계가 구축됨으로써 한?미 동맹관계는 일방적인 미국주도의 동맹 체제를 형성한 채, 그 첫발을 내딛게 되었고 냉전기간 동안 그와 같은 특성은 계속해서 유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점들을 고려할 때, 한ㆍ미 동맹체제는 다음과 같은 본질적 특성들을 바탕으로 작동되고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첫째는, 일방적 미국주도의 동맹관계의 형성이었다. 한국과 미국이라는 동맹 당사국들 간의 엄청난 국력 차, 한국과 한반도 주변의 소련, 중공과의 국력 차, 그리고 북한과의 직접대결 국면으로 인하여 안보문제에 있어서 한국은 미국에게 일방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한ㆍ미 동맹관계는 상호의존성 측면에서 극단적 비대칭성을 나타냄으로써 동맹 간의 주요 의제들에 관해 미국은 한국에게 일방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강요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은 구조적으로, 미국의 선의를 기대하는 것 이외에는 미국을 상대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위치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둘째는 동맹가치의 평가기준이 상황 의존적이라는 사실이다. 한ㆍ미 동맹관계에 있어서 한국의 가치는 미국의 세계전략 또는 지역전략의 변화에 따라 일방적으로 한국의 의미가 재평가되는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이것은 곧, 미국이 한국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국익의 성격이 일본의 그것처럼 본질적 가치를 토대로 하고 있기보다는 세계 또는 지역전략 속에서 파생적이고 한정적인 가치를 기초로 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특성은 미국의 군사적 이해가 존재하지 않던 1945년 이전의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무관심, 1945년에서 1949년 사이의 미국의 부분적 지원, 1950년 한국전쟁 이후의 전폭적 지원 및 동맹관계 형성 등과 같은 미국의 한국에 대한 군사지원 양태의 변화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었다.
셋째는 동맹대안의 부재이다. 냉전체제 속에서 한국은 사실상 미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와의 동맹을 통해서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할 수 없었다. 소련과 북한, 또는 중공과 북한이 연합하여 공격할 경우 한국은 미국의 도움 없이는 국가의 존망을 보존할 아무런 대안이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체제적 특징은 결과적으로 미국과의 관계에 있어서 의존성을 증대시켰을 뿐 아니라 한국의 행동의 자유를 심각하게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되었던 것이다.
 
앞에서의 논의들을 종합해 볼 때, 효율적인 봉쇄정책의 추진을 중요한 국가이익으로 규정하고 있던 미국이 한국과의 동맹관계를 통해서 확보하고자 했던 동맹의 목적은 다음의 두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한국에 대한 전폭적인 안보지원을 통해 한국을 반공의 보루이자 서방세계, 특히 미국에게 우호적인 국가로 유지하는 것이었으며, 둘째는 한국이 미국의 통제범위를 벗어나거나 한국에 의해 미국의 행동이 제약받는 상황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동맹의 상위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미국이 구체적으로 취해야 할 하위목표들은 다음의 몇 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미국에게 우호적인 반공정부의 유지, 둘째, 한국의 안정된 유지를 위한 군사ㆍ경제원조 및 대공산 억제력제공, 셋째, 한국에 대한 통제 및 미국의 행동의 자유보장 확보를 위한 조치로서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의 유지 및 군수지원체제의 통제, 한국 단독이 아닌, 한ㆍ미 연합전력을 통한 방어체제의 확립, 자동개입조항이 삽입되지 않은 상호방위조약의 유지가 바로 그것이었다.
 
한편, 이와 같은 문제점들을 태생적으로 지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ㆍ미 동맹관계는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억제하는 가장 확고한 토대가 되어왔음을 인정해야만 한다. 이런 점들을 놓고 볼 때, 결국 한ㆍ미 동맹관계는 한국이 추구하는 안보전략차원의 국가이익과 미국의 동북아에서의 국가이익의 중복성을 토대로 유지ㆍ강화되어 왔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전쟁억제력을 확보하려는 한국의 목표와 동북아에서의 공산세력의 팽창 방지 및 한반도의 안정 그리고 지역 내에서의 미국의 영향력유지라는 미국의 목표가 완전히 일치할 수는 없었지만 기본적으로 한ㆍ미 군사력의 결합이 북한의 남침을 억제함으로써 양국의 국가이익에 기여한다는 점에서는 인식을 함께하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기본적 국가이익의 일치는 한ㆍ미 동맹관계를 냉전기는 물론 오늘날에도 지속적으로 유지시키는 기본 토대가 되어오고 있는 것이다.
 
 
제 2 절  한ㆍ미 동맹체제와 한국군
 
1. 한국의 군사력 수준에 대한 미국의 입장
한ㆍ미 동맹체제하에서의 한국군의 역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한국군에 대한 미국의 시각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한ㆍ미 동맹체제는 비대칭성을 토대로 하고 있었고 동맹유지의 주도권이 미국에게 주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군사력에 대한 미국의 시각은 한ㆍ미 상호방위조약에 상징적으로 반영되어 있다. 전문과 본문을 합쳐 모두 6개조로 구성되어 있는 상호방위조약 중, 양국 간에 가장 논란꺼리가 되었던 부분은 제 2조와 3조의 문구에 관한 것이었다. 제 2조에서는 어느 일국이 외부로부터 무력공격에 의해 위협을 받을 경우 ‘자국 스스로 그리고 상호지원에 의해 단독적 그리고 연합으로(separately and jointly, by self and mutual aid)’ 취할 수 있는 적절한 수단과 조치와 관련해서 서로 협의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는 분명히 상호지원의 한계를 외부로부터 무력공격을 받을 경우에 한해서 방위조약이 효력을 발휘하도록 규정함으로써 한국에 의한 전쟁 상황 발발의 경우는 제외토록 한정하고 있다. 이것은 이승만 대통령의 무력통일 주장의 결과로서, 법적으로 한국의 행정 통제 하에 있는 영토에 대한 외부로부터의 무력공격의 경우에만 미국의 지원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조건으로 미 상원은 1954년 1월 26일 조약체결에 동의하였던 것이다.
 
또한 제 3조에서는 피침시 ‘자국의 헌법절차에 따라(in accordance with its constitutional process)’ 공동의 위협에 대처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은 곧 NATO의 자동개입 조항과는 다소 다른 절차를 규정함으로써 한반도 사태에 미국이 일방적으로 끌려 들어가는 것을 일차적으로 방지하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셔크(Astri Suhrke)의 경우에도 이러한 미국의 정책은 기본적으로 한ㆍ미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기 위한 협상과정에서 나타난 이승만의 비 신뢰성 전술의 결과로 분석하고 있다. 즉 이 대통령의 지속적인 북진통일 주장은 한국의 행동의 자유에 대한 통제를 강화시키는 결과를 불러왔는데 상호방위조약은 동맹 의무의 범위를 제한하였고 군사분계선을 넘는 한국의 작전에 대한 미국의 지원을 배제하였으며, 한국군을 유엔과 미군의 작전 통제 하에 유지 시키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결국 한ㆍ미 상호방위조약은 한국의 안보를 보장하기 위한 가장 신뢰성 있는 안전판인 동시에 한국의 행동을 일정한 한도 내에서 제한하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었다. 또한 한국군에 대한 보다 직접적인 통제는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유엔군사령관이 보유함으로써 합법적으로 그리고 효과적으로 통제력을 발휘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상황 하에서 미국의 의도는 첫째, 재정적인 면이나 정치적인 면에서 최저비용을 들여 북한의 남침기도를 억지하는 것이었고, 둘째, 한국에 의한 북침 가능성을 예방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미국은 한국의 지상군과 미국의 해ㆍ공군력을 합친 군사력이 북한의 전체 군사력에 대응하도록 하면서 북한에 대한 한국군의 공격위협을 자초하지 않도록 한국군에 대한 통제권을 계속 유지하려 했던 것이다. 결국 한국의 지상군과 해군, 공군력의 구성상에서 나타나는 불균형은 미국의 의도에 의해 초래된 것이며 미국은 한국의 국방능력이 구조적으로 미국 군사력에 의존하도록 군사원조계획을 구상했던 것이다. 그 결과 한국의 해ㆍ공군력 발전은 지상군에 비해 불균등하게 지체되었고 미 공군과 해군의 지원 없이는 어떠한 대규모 군사작전도 독자적 수행이 불가능한 형태로 체제화 되었던 것이다.
 
미국의 ‘국가안보회의(National Security Council)’관련 기록을 검토해 보면 이와 같은 정책이 냉전기 미국의 대한 정책의 핵심으로 자리 잡고 있었음이 확인된다. ‘국가안보회의보고서 (National Security Council Report: NSC 5817)’에서는 미국의 대한정책 목표를 다음과 같이 설정하고 있었다. 즉, 미국의 대한 정책의 장기목표는 자립경제를 유지하고 자유, 독립, 그리고 대표성을 지닌 정부 하에서 미국과 국제적으로 동의를 받는 다른 국가들에게 우호적인 통일 한국을 이루어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국이 내부적 안보에 충분하고 외부의 공격에 강력히 저항할 수 있는 군사력을 보유하도록 하는 것을 포함시키고 있었다. 한편, 현행 목표는 한국이 태평양지역에서 자유세계의 힘에 실제적으로 공헌할 수 있도록 한국을 지원하는 것이었는데 보다 세부적으로는,
첫째, 한국이 장차 안정된 민주제도와 아시아의 다른 자유국가들과 협력적인 관계를 발전시키도록 격려,
둘째, 경제발전 독려,
셋째, 내부폭동이나 침략에 의한 공산화방지,
넷째, 한국군은 내부안보를 확보할 능력을 유지시키고, 주한미군과 함께 북한 단독 또는 북한과 중국의 연합세력을 억제 또는 대응,
다섯째, 유엔헌장의 원리와 목적에 부합하는 한국의 대외관계 유지, 여섯째 필리핀ㆍ일본ㆍ대만ㆍ한국을 포함하고 궁극적으로는 호주ㆍ뉴질랜드조약(ANZUS) 및 동남아시아 조약기구(SEATO) 와 연계되는 서 태평양 집단 안보협정의 형성과 참여에 필요한 조건을 촉진한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있었다.
 
여기서 특히, 주목할 점은 미국이 한국의 군사력 수준을 한국의 내부안보를 책임질 정도로 유지하고 그 이상의 위협에 대해서는 주한미군 및 외부로부터의 지원과 결합하여 대처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한국의 군사력이 북한을 상회하는 수준을 유지하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이다. 이것은 곧 한국군의 전력우세가 미국이 원치 않는 상황을 불러올 수도 있다는 염려를 반영한 것이며 결과적으로 한국군에 대한 유엔군 사령부의 작전통제는 필수사항으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2. 한ㆍ미 동맹체제에서의 한국군의 의미 변화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한ㆍ미 동맹체제 하에서의 한국군의 의미는 내부적 차원의 안보를 유지하는 정도로만 인식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한국군의 제한된 의미가 외연적으로 확장되고 적극적인 국가정책의 수단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한국이 베트남전에 한국군의 파병을 적극적으로 고려하면서 부터였다.
 
존슨 행정부는 베트남전을 미국 단독으로 수행하는데 따른 세계여론과 미국 내의 여론을 호전시키면서 곤경에 빠진 베트남전을 계속 수행하기 위하여 미국 이외의 연합국을 참여시키기 위한 ‘More Flag'정책을 구상하였다. 이 당시만 해도 한국의 군사력에 대한 미국의 평가는 베트남전 수행이라는 측면에서 중대한 가치를 지니는 것은 아니었으며 상황적 맥락에 의하여 상대적으로 중요성이 높게 평가 되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일단 파병이 된 이후의 상황은 달랐다. 한국은 한때, 5만 여명에 달하는 병력을 베트남에 파견하여 미국을 도왔으며 한국을 제외한 어느 국가도 지속적으로 그 정도 대규모의 병력을 파병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결국 한국은 베트남전 파병을 통해서 미국으로부터의 안보 및 경제지원을 확대시켰고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강화시킬 수 있었다. 이와 같은 한국정부의 조치는 로스타인(Robert Rothstein)이 적절히 지적하고 있듯이 비대칭적인 불평등한 양자 동맹관계에서 약소국의 주장이 수용 될 수 있는 길은 강대국의 기본적인 정책과 공통적 정책노선을 취할 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임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김현동의 경우에도 미국이 베트남전에 단계적 개입정책을 확정함에 따라 한국 정부는 이에 능동적으로 적극 협력하는 것이 한국 정부가 늘 희망해 왔던 수준의 방어전력 증강에 대해 미국정부의 동의를 얻을 수 있는 기회로 판단하였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정부의 파월결정은 한국군 전력증강과 관련하여 미국의 전통적 견제정책을 변화시키기 위하여 미국의 세계정책에 미리 적응한 좋은 예가 될 수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한국의 파병은 본질적으로 한국과 미국의 동맹관계에서 연유된 것이었으며 한국의 군사력은 미국의 군사력과 합쳐져 베트남에서의 미국의 국익을 보장하기 위하여 적절히 활용될 수 있었던 것이다. 즉 비대칭적인 동맹관계에서도 군사력의 결집은 약소국에게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강대국에게도 상황에 따라서 큰 의미를 지닌다는 점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인 동시에 약소국은 자국의 군사력을 대외정책의 수단으로서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음을 확인시켜주는 계기를 마련하였던 것이다.
 
한편, 한ㆍ미 동맹체제에 있어서 한국군의 역할을 다시한번 되짚어 보게 만드는 계기는 닉슨 독트린 선언과 이후 추진과 중단을 반복했던 주한미군 철수문제와 함께 다가왔다. 미국은 중공을 활용하여 소련을 견제하고 일본을 활용하여 중ㆍ소를 견제함으로써 안정된 세력균형체제를 유지할 수 있으므로 한반도의 안정 혹은 불안정은 미국의 동북아전략에 그다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입장을 견지하게 되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미국은 아시아에 주둔한 미군을 감축하는 정책을 취하였고 여기서 오는 힘의 공백은 일본과의 협조 및 중공과의 화해를 통한 세력균형의 방법으로 메우려 하였다. 결국, 1971년에 2만 명의 주한미군이 철수하였으며 미국정부는 한국의 반대를 무마하기 위하여 철군의 대가로 한국군 현대화 5개년 계획을 위해서 1971년부터 1975년까지 무상원조 12억 5천만 달러와 2억 5천만 달러에 달하는 군 장비의 이양을 약속했다.
 
그 후에도 물론, 미국은 한국군이 월남에서 철수하면 2차로 철군할 것을 계획했었으나 이 계획은 한국군 현대화 5개년 계획의 지연과 월남패망 이후 북한의 위협의 증가로 실행되지는 않았으며 포드 행정부에 들어서면서 완전히 중지되었던 것이 카터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다시 제기되었던 것이다. 당시 카터의 철군주장의 근거는, 첫째 한국의 자체방위능력 향상, 둘째 소련과 중국 어느 나라도 북한의 무력침공을 부추기지 않을 것이라는 점, 셋째 철수하는 지상군의 전투력을 보충하기 위한 장비의 공급, 넷째 공군과 해군 그리고 지원부대를 통한 한국방위 등이었다.
 
앞에서와 같은 주한미군의 철수 이유를 분석해 볼 때, 한반도에서의 군사력 균형이 미 지상군의 철수 이후에도 한국군을 주축으로 하고 공군과 해군 그리고 주요지원부대의 잔류를 통하여 이루어질 수 있다는 판단이 중요한 요소로 자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동시에 주한 미 지상군의 철수 번복은 궁극적으로 북한의 위협에 대한 새로운 평가가 중요한 이유가 되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기본적으로 한반도와 동북아의 안정이라는 미국의 국가이익에 비추어 한반도에서 한국군과 미군의 결합이 미국의 국익에 기여하는 비중은 지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한때나마 미국이 지상군의 철수를 통해서도 한반도의 군사적 균형이 유지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자체가 한국의 군사력에 대한 이전의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한ㆍ미 동맹체제하에서의 한국군의 역할에 대한 미국의 인식변화는 앞에서 살펴본 대로 한국군을 국가정책의 수단으로서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던 베트남전 파병으로부터 연유한 것이라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즉 한국정부는 한ㆍ미 동맹관계에 있어서 한국군의 전략적 가치에 대한 미국의 인식을 한국의 내부안보를 책임지거나 미국의 보조적 역할로서의 한국군에서 한국방위의 중요 역할수행 또는 타 지역에서의 활용가능 자원으로 확대시켰던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인식변화는 궁극적으로 보다 동등하고 비중 있는 동맹파트너로서의 위상을 확보시켜 주었으며 주둔군 지위협정의 체결, 연합방위태세를 강화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해온 한ㆍ미 연례안보회의 (SCM: Security Consultative Meeting)의 개최, 방위비 분담문제의 대두 등은 이와 같은 인식변화의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사안들이다.
 
 
제 3 절 군사력의 역할
 
클라우제비츠(Carl von Clausewitz) “한 국가는 폭력행위를 통하여 목표를 달성하고자 군사력을 사용하지만, 그 목적은 결코 폭력 그 자체가 아니라 폭력없이는 획득할 수 없는 목표의 성취에 있다”고 하였으며, 국가가 가지고 있는 최고 형태의 폭력인 전쟁을 “다른 수단에 위한 정치적 행동의 계속”으로 보았다. 이는 군사력이 평화적 정책의 도구로서 사용될 수 있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군사력은 전시에 대비하기 위해서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안보정책담당자들은 군사력을 정책의 다른 대치 도구로서가 아니라 혼용되는 상호보완적 정책수단으로 인식하고 있다.
 
국제관계에 있어서 군사력의 역할과 그 운용 유형은 학자들마다 제각기 다른 관점에서 여러 가지의 유형의 군사력 운용 범주를 제시하고 있다. 프린스턴 대학의 클라우스 노어(Klaus Knorr)는 한 국가가 군사력의 사용을 통해 다른 국가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군사력 운용의 메카니즘’을 전쟁, 위협 및 군사력 사용 가능성에 대한 예상 등 세 가지로 분류하고 있으며, 파델도르프 등 세 명의 학자들(Norman J. Padeldorf, George A. Lincoln, Lee D. Olvey)은 한 공동저서에서 ① 억제, ② 억제가 실패할 경우에 있어서의 방위, ③ 강압, ④ 협상을 위한 배경으로서의 역할, ⑤ 국위의 상징, ⑥ 방패로서의 역할, ⑦ 지도력과 발전에의 기여 등을 제시하였다.
 
또한 줄이안 라이더(Julian Lider)는 ① 국가이익을 위한 외교 노력의 지원 및 상대로 하여금 양보와 협력 제의를 하도록 강요하기 위한 경고와 위협, ② 타국의 공식적 견해와 여론에 영향력 행사, ③ 군사지원 (무기공급 및 군사고문단의 파견 등) 을 통한 정치적 영향력 획득 미 우호적 정권에 대한 지원, ④ 군사지원의 군사개입으로의 전환, ⑤ 국가의 이념적 선전과 국제적 권위의 향상 등이다.
 
상기의 군사력 역할 및 운용에 관한 제 학자들의 논의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군사력은 실질적이고 물리적인 사용에 의해 상대국에게 제재나 규제를 가할 수 있는 적나라한 폭력수단으로서 뿐만 아니라, 평시에 국가이익을 옹호하고 정치적 영향력을 투사하는 외교적 도구로서도 기능하는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나 군사력의 역할은 이와 같은 범주로 구분하는 것은 실제에 있어서는 어려운 일이다. 어떤 특정 국가의 군사력 역할과 운용방식을 파악하고 구분하기 위해서는 그 국가의 군사력 사용 동기를 이해해야 하나, 실제에 있어서는 구 국가의 행위를 통해 그 동기를 찾아내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하나의 행위에 항상 하나의 동기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한 행위 속에서 여러 가지의 복합적인 의도와 동기가 깔려 있게 된다.
 
따라서 본 연구보고서에서는 군사력의 역할과 운용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개념을 도입하여 적용하였다. 어떤 특정 국가에 있어서 군사력의 운용은 의도와 동기가 완전히 파악되지 않는 한, 군사력의 역할과 운용방식을 구체적으로 범주화하는 것은 어려운 작업이다. 그러나 군사력의 운용 개념과 형태는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구별될 수 있다. 하나는 군사력의 실제적 사용이며, 다른 하나는 위협과 같은 군사력의 불사용이다. 군사력의 실제적 사용 형태는 힘을 적나라하게 사용하는 것으로서, 상대방의 파멸이 그 궁극적인 목표가 된다.
 
군사력의 불사용 형태는 군사력을 사용하겠다는 위협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는 상대방 국가에게 비용을 부과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군사력이 외교적 통로를 통해 상대방 국가에게 알려진다. 이는 억제를 목표로 한다. 즉, 이 경우 군사력은 상대방 국가로 하여금 하고자 하는 바를 중지 내지는 포기하도록 하는 부정적 영향력 행사의 수단으로 사용된다. 군사력을 잠재적 영향력의 기반으로 운용하는 것 또한 이러한 형태의 군사력 운용 개념에 포함된다. 이는 상대방 국가로 하여금 자신의 군사력 실체와 그것의 사용 가능성을 인식토록 함으로써 자신에게 도전하지 못하게 함을 말한다.
 
그러나 군사력의 운용 개념과 형태는 이 두 방향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와 같은 양극단의 중간에는 항상 회색지대(grey area)가 존재한다. 이는 어떤 특정 국가가 상대방 국가에 대해 군사력 동원 및 배비를 했으나, 그 국가에게 피해를 줄 정도로 군사력을 운용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이 경우 군사력의 위협은 존재하나 그 사용은 애매모호한 상태로 남는다.
 
이와 같은 세 줄기의 군사력 운용 개념은 하나의 스펙트럼상에 나타내어질 수 있다. 군사력의 적나라한 사용 개념과 군사력의 불사용 개념을 양극단으로하는 스펙트럼을 가정하면, 이 스펙트럼의 중간부분은 회색지대가 된다. 군사력의 운용 유형도 이러한 구분에 기초하여 범주화할 수 있다. 전쟁과 억제 그리고 강압외교가 그것이다. 전쟁은 군사력의 적나라한 사용을 본질로 하고 있고, 억제는 군사력의 불사용 개념에 입각하고 있다. 그리고 강압외교는 군사력의 사용 개념과 불사용 개념이 혼재된 회색지대에 해당된다.
 
군사력의 운용 개념인 억제와 강압외교의 차이점은 다음과 같다. 토마스 쉘링(Thomas C. Schelling) “억제란 위협의 사용으로 상대방의 의도에 영향력을 행사하여 무엇을 못하게 하는 것이며, 강압이란 위협을 통하여 상대방이 무엇을 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구분하면서 두 개념의 가장 큰 차이점을 시기(timing)와 주도권(initiative)의 측면에서 분석하였다. 즉, 어떤 국가가 강압적 행동을 할 때에는 통상 상대방 국가가 어떤 행동의 변화를 가져 올 때까지 응징을 계속 가하는 것에 비해, 억제의 경우는 상대방 국가가 어떤 행동을 시작할 때 응징을 가하는 것이다. 그 차이점을 구체적으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억제는 수세적이고 소극적이며 정태적인 특성을 띠고 있다. 국가 간의 사태를 정태적인 것으로 보고 있으며, 국가간 관계의 동태적 속성과 장기적 흥정과정을 중시하지 않는다. 즉, 극한상황 속에서 결정의 순간을 중요시하며, 관련된 모든 조건이 시종일관 불변인 것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여건이 유동적이고 여러 대응책 모색이 가능한 분쟁이나 제한전쟁의 상황 속에서 억제전략은 효과적이지 못하다. 이에 반해, 강압외교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이며 동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다. 강압적 행동은 유동적이고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상대방 국가로 하여금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함으로써 무엇인가를 창출하기 위한 적극적 영향력 수단이 된다. 즉, 상황의 변화에 따라 동태적으로 힘의 수단을 운용한다.
둘째, 억제는 상대방이 결정하는 행동 방향에 따라 자국의 대응 방향이 결정되기 때문에 상대방 국가가 주도권을 갖게 된다. 그러나 강압외교는 상대방 국가가 자국이 원하는 반응을 보일 때까지 강제적 행동을 계속 가하게 되므로 주도권을 자국이 갖게 된다.
셋째, 억제를 위한 위협은 언제까지 무엇을 하라고 하는 시간적 제한이 없다. 이는 어떤 일정한 선을 제시하고 그 선을 넘으면 보복을 가하겠다고 위협함으로써 상대방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일정한 시간제한이 없다. 그러나 강압외교는 시간의 제한을 중시한다. 시간제한 없이 상대방 국가로 하여금 무작정 무엇인가를 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효과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으로서도 상대방의 행동 변화를 무작정 기다릴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끝으로, 억제는 ‘무엇을 하지 마라’ 또는 ‘아무 것도 하지 마라’라고 함으로써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가 아주 명료하다. 그러나 강압외교는 ‘무엇을 하라’라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어떻게 얼마만큼 하라는 구체적인 선을 제시하지 않으므로 목표가 불분명하다.
 
국제관계는 다양하고 복잡하다. 국가들의 목표와 행동도 단순하지가 않다. 국제체제는 서로 다른 가치와 제도, 문화, 동기와 성향 등을 가진 단위체들 간의 복잡한 상호 작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유동성과 불확실성이 국제관계의 기본 특성이며, 다양한 양태의 갈등과 분쟁이 국가들 간의 관계에 내재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이익을 지키고 국가의 정책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현실적이고 적극적이며 능동적인 강압수단의 활용방안 모색이 필요하다. 강압외교는 그 대표적인 전략형태라고 할 수 있다.
 
 
제 4 절 국가정책 수단으로서의 해병대
 
1. 한ㆍ미 동맹체제와 한국군의 역할
제 2 장의 이론적 논의에서 확인하였듯이 후견-피후견 모델에 따르면, 비대칭적인 힘을 가진 국가사이의 관계는 보호의 대가로 용역, 충성 또는 복종이 자발적으로 때론 압력에 의해 제공된다. 또한 피 후견국의 양보를 얻기 위해 특별자금이나 군사장비의 지원이 이루어질 수 있다. 한편, 후견국과 피후견국 간의 교환은 공식적으로 집단안보 혹은 ‘상호의존적 안보(Interdependent Security)’ 체제로서 동맹을 창출시키고 안보이전은 사실상 피 후견국의 안보와 관련하여 양국사이에 ‘기능적 분업(Functional Division of Labor)’을 형성케 한다. 그러므로 후견-피후견 국가관계가 형성되면 피후견국은 안보에 대한 물질적 또는 심리적 불안정감을 경감시키는 대신에 후견국에 대하여 대외적인 정치ㆍ군사적 자율성 측면에서의 양보를 감수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약소국이 자발적으로 강대국이 좋아할 일이 무엇인지를 찾아내기도 한다.
 
이 외에도 모로우가 적절히 지적하고 있듯이 강대국은 대외정책의 현상유지에 변화를 추구하기 위하여 동맹을 이용할 수 있고 약소국은 강대국에게 군사기지의 제공, 대내 혹은 대외정책에 있어서의 협조와 같은 양보를 제공함으로써 강한 동맹국의 행동의 자유를 높여주는 대신에 외부적 위협으로부터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다. 이런 점들을 감안한다면 어떤 약소국은 강대국에게 매력을 느끼게 할 만한 이득을 제공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동맹을 형성하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군사기지가 유인이 될 수 있는 경우, 모든 약소국이 그러한 전략적 위치를 점유하고 있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비대칭 동맹에 있어서의 군대의 구성문제를 제기한다. 즉 지배적인 국가는 동맹의 군대가 동맹의 안보 보다는 자국의 자율성을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구성되기를 희망하기 때문에 자율성과 안보이해가 각기 다른 군대체제를 요구할 때 적절한 군대의 체제문제와 관련하여 비대칭 동맹내의 갈등이 예상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앞 장에서의 논의들을 기초로 판단해 볼 때, 한국과 미국간의 군사동맹관계가 수립되던 시기의 제반 여건들은 양국 간의 군사 동맹관계를 전형적인 후견-피후견 국가관계의 하나로 자리 잡게 했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 모델의 설명력이 한ㆍ미 동맹관계에 관한 사례분석을 통하여 입증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미국은 한국의 안보를 보장해주는 대신에 한국으로부터 자율성측면의 양보를 확보함으로써 효율적인 봉쇄정책의 추진이라는 세계전략 또는 지역전략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또한 이런 시각에서 본다면 한국이 1961년에 자발적으로 베트남전 파병을 제안한 것은 미국과의 관계 강화 및 미래를 위한 투자라는 측면에서 그런 제안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후견-피후견 모델은 한ㆍ미 동맹체제에 있어서 한국의 군사력이 지니는 의미를 이론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좋은 틀이 되어주고 있다. 헌법에 나타난 한국의 국가이익을, 첫째 국민의 안전보장, 영토의 보존, 주권의 보호를 통해 독립국가로서 생존하는 것, 둘째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과 복지를 증진하고 국가의 발전과 번영을 기하는 것, 셋째 자유와 평등, 인간의 존엄 등 기본적인 가치와 자유 민주체제를 유지 발전시키며 민족문화를 창달하는 것, 넷째 국위를 선양하고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하는 것, 다섯째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달성하는 것으로 보았을 때, 한국의 군사력은 미국과의 동맹 체제를 통하여 국가이익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국가의 생존을 보장함으로써 다른 형태의 국가이익들을 추구할 수 있는 근본적 토대를 마련해 주었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한국의 군사력이 북한을 상회하는 수준을 확보함으로써 미국이 원하지 않는 한반도 상황에 봉착하게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연합방위체제를 통한 억제력의 확보를 한국 군사력의 상한선으로 한정짓고 있었고 군대의 구성문제에 있어서도 한국군은 지상군 위주로 편성하고 전략적 타격능력을 갖는 해군과 공군은 미군이 주축을 이루는 형태를 추진하였던 것이다.
 
한편 한국은 국가의 생존을 보장받으면서 이를 토대로 국가의 번영 추구와 같은 또 다른 국가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대표적으로 베트남전 파병 사례에서 나타나듯이 미국의 정책에 적극 동조하였고 이와 같은 목적을 위해 군사력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였다. 동시에 한국의 군사력은 미국의 군사력과의 결집을 통하여 궁극적으로 미국의 동북아 전략에 핵심적으로 기여하였다. 한국의 군사력이 미국 본토의 직접적인 안보를 유지하는데 기여하지는 못하였지만 미국의 국가이익의 하나인 한반도의 안정과 지역 내 영향력의 유지 그리고 공산세력의 팽창저지라는 목표달성을 위해서는 커다란 유용성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군사력의 역할에 대해 논의할 때, 자주 인용하는 아트(Robert J. Art)의 경우에는 군사력의 목적을, 첫째 방어(Defensive Use)로서 적의 공격을 물리치거나 공격을 받았을 시 피해를 최소화 하는 것, 둘째 억제(Deterrent Use)로서 상대방이 감당할 수 없는 피해를 통해 위협함으로써 도발을 자제시키는 것, 셋째 강압(Compellent Use)으로서 상대방이 이미 취한 행동을 멈추게 하거나 아직 취하지 않은 행위를 취하도록 만드는 것, 넷째, 시위(Swaggering)로서 국가의 자존심을 높이거나 타국에게 국가의 이미지를 강화할 목적으로 군사훈련이나 국가적 행사에서 군사력을 시위하거나 최신 무기류를 구입하는 방식 등을 제시하고 있다.
 
이와 같은 기본적인 군사력의 역할을 감안해 볼 때, 군사력은 국가 활동의 주요수단으로서 국가의 방위와 침략의 억제 그리고 자국의 의사를 타국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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