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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博士學位論文)韓半島와 東北亞 多者安保協力機構에 관한 硏究-第 5 章 南北韓 및 關聯國의 立場과 多者安保協力의 必要性
작성자 이정윤 작성일2008-11-20 오후 4: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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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5章  南北韓 및 關聯國의 立場과
                          多者安保協力의 必要性


韓半島는 地政學的으로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강대국으로 둘러싸여 있어 그들의 위협에 직면하여 왔으며, 따라서 한반도의 운명은 이들 강대국들이 형성하는 東北亞 權力構造의 機能에 의하여 결정되어 왔다고 Hans J. Morgenthau교수는 지적하고 있다.   한반도가 大陸勢力이 태평양으로 진출하기 위한 關門의 역할을 해왔고, 海洋勢力의 대륙 진출을 위한 橋頭堡 역할을 해왔던 것이다.  특히 러시아는 不凍港 확보를 위하여, 그리고 일본은 대륙에 대한 憧憬 때문에 한반도에 대한 이들의 관심은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종료된 후 美·蘇間 힘의 對決場으로 변한 한반도는 탈냉전시대를 맞이하여 安保環境의 급속한 변화로 주변 4강들의 복잡한 利害關係로 얽혀 있다.  특히 한반도 통일이나 駐韓美軍의 撤收 등과 같은 狀況變化로 발생할 수 있는 힘의 空白으로 주변 4강들의 主導權 行使를 위한 ‘싸움장’으로 변할 우려가 있다.
그러나 냉전시대의 核心部였던 유럽에서 탈냉전시대를 맞이하면서 유럽안보기구(OSCE)와 같은 多者協力機構를 통하여 和解와 協力을 바탕으로 평화적인 문제해결을 모색한 것은 바로 탈냉전시대에 基本行爲法則의 변화를 보여주는 좋은 先例로 보아, 한반도 주변국들간의 多者協力의 필요성과 가능성이 강하게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이론적으로 國際體制가 地域體制에, 地域體制가 國家行爲者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相互作用關係를 고려할 때, 탈냉전체제는 동북아지역체제에, 동북아지역체제는 남·북한은 물론 주변의 國家行爲者들인 미·일·중·러에게 영향을 주게 된다.  한반도 주변국간의 다자간 안보협력기구의 실현 가능성은 직접적으로 이러한 관련국가들의 수용여부에 달려 있다고 하여도 過言이 아니다.  따라서 지역내 관련국가들의 다자간 안보협력기구에 대한 입장을 검토해 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제1절  韓國과 東北亞 地域安保

1. 韓國의 政策과 立場

韓國은 현재와 같이 분단된 상황에서 半世紀가 넘도록 남북한 당사자간의 대화로 分斷問題를 해결하려고 노력하여 왔으나, 구소련의 붕괴 이후 냉전체제가 와해되어 국제적 和解와 協力의 시대를 맞이하면서도 전혀 進展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미국과 중국이 참여하는 4자 회담을 추진하여 停戰體制를 平和體制로 전환하면서 한반도 統一環境에 긍정적인 여건을 조성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한반도 통일 이후에는 핵을 보유하거나, 핵보유 능력이 있는 주변 4강들 속에서 통일한국의 主權保存과 生存權 확보차원에서 미국과 중국뿐만 아니라 일본 및 러시아를 포함한 주변 4강 모두가 참여하는 多者間 安保協力機構의 설립추진이 절실하게 필요한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한국은 그 동안 동북아 다자간 안보협력문제에 대하여 消極的 입장을 보여 왔다.  이처럼 한국이 지역내 多者間 安保協力 問題에 대해 소극적 자세를 견지해 온 것은 한국의 安保政策 및 軍縮政策의 기조와 관련지어 분석해 볼 때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첫째, 동북아 다자간 안보협력 문제에 줄 곧 반대해 온 美國의 立場을 고려했기 때문이라고 분석된다.   한국의 안보정책 및 전략이 미국과의 雙務的 安保協力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역내 다자간 안보협력기구를 통한 多者主義的 접근이 기존의 韓·美 안보동맹체제에 손상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크게 작용했다고 본다. 
둘째, 한국의 군비통제 및 군축정책이 지니고 있는 對北指向的 性格은 安保 및 軍縮問題에 대한 다자간 접근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해 왔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의 군비통제 및 군축정책이 對北 對應的 수준에 한정됨에 따라 다자간 안보협력 방식에 능동적으로 적응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1988년과 1992년 두 차례에 걸쳐 UN총회에서 남북한과 미·러·중·일의 6개국이 참여하는 ‘東北亞 平和協議會議’ 개최를 제안한 바 있다.  이 제안은 동북아에서의 美·蘇 대립완화, 한반도 문제 해결, 日·蘇간의 領土紛爭 해결, 中·蘇간의 화해, 한국과 中·蘇와의 관계개선, 북한의 美·日과의 관계개선 등 아·태지역에서의 안정, 평화, 협력의 제도화를 위해서는 21세기의 태평양 시대에 대비하여 포괄적인 안보문제 협의를 위한 多者間 협의체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東北亞 平和協議會議’ 제안 배경은 서울올림픽의 성공적 주최, 북방정책의 추진 등으로 냉전체제에서의 한반도 주변정세가 변화하리라는 기대와 국제정세의 전반적인 好調로 과거 적대적이었던 중국과 소련과도 對話와 交流가 가능해질 것이라는 기대감에 起因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당시 한국의 판단으로는 소련이 이미 「크라스노야르스크 평화안」을 제안하는 등 多者間 協議에 적극적인 관심을 표명했고, 시베리아 개발을 軸으로 한 對韓國 자세 전환의 조짐을 보였으며, 중국도 경제개혁의 지속적인 추진을 위하여 동북아 협력이 현실적으로 필요할 것이라고 보았다.  일본 역시 경제력에 부응하는 국제적 역할을 摸索하고 있었지만 지역협력에 先導的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상황을 打開할 수 있는 방법으로서 일본이 한반도문제를 비롯한 동북아 안보문제의 協議에 적극 참여해야 할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또한 미국은 지리적 위치, 종래의 쌍무적 관계의 置重에서 오는 制約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구도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이 협력이 이루어지면 미국이 보다 적은 費用으로 태평양 국가의 中心勢力으로 계속 남아있을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경제적인 한계점에 직면한 북한으로서도 미국, 일본 등과의 관계개선의 기회로 삼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한국의 입장을 결코 반대만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한국정부의 提案은 주변의 관련국가들과 事前 協議가 없었고, 협력의 목적은 명목상으로 동북아지역을 겨냥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한반도의 평화를 겨냥하는 것이어서 周邊國으로부터 별다른 反應을 불러일으키지 못하였다.
1993년 이후 한국은 다자간 지역안보협력회의 창설문제에 대해 보다 능동적인 자세를 보였으며, 이 같은 정책변화의 조짐은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1993년 3월 15일 韓昇洲 외무장관은 한반도문제의 해결에 있어서, 당사자 해결원칙을 견지하면서 동북아 다자간 안보협력체 구상이 기존의 韓·美 安保協力體制를 손상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적극 참여할 것이며, 同年 5월과 7월에 각각 열린 지역안보 문제에 관한 高位實務者會議와 ASEAN-PMC에 정부대표를 파견할 것이라고 밝혔으며, 그의 이 같은 입장은 多者安保協力體 형성을 촉구한 1993년 5월 4일 국회 대정부 질문의 답변에서 동북아 관계국들간의 信賴構築을 위해 동북아지역안보대화를 추진하고, 亞·太 地域의 무역자유화를 위해 이 지역 내에 새로운 경제블럭을 추진하겠다고 밝힘으로써 다시 확인되었다.
한국의 다자안보협력 구상은 1993년 5월 24일 서울에서 개최된 「太平洋經濟協議會」 제26차 총회의 기조연설에서 김영삼 대통령이 밝힌 「新外交」가 지역내 다자간 안보협력을 신정부의 주요한 정책으로 간주하고 있어 주목받기도 하였다.  그는 “太平洋 時代와 韓國의 新外交”라는 제목으로 基調演說을 하면서 태평양 시대의 도래에 따라 아·태 지역협력 강화를 모색할 것이며, 지역내 다자간 안보대화에도 적극 호응한다는 입장을 천명하고, 지역 안보대화가 장차 안보협력으로 발전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준비할 것임을 밝힘으로써 한국의 多者間 安保協力에 관한 의지를 표명한 바 있다.
이러한 한국의 政策路線은 1993년 5월 31일 한승주 외무장관의 外交協會 演說에서 다시 확인되었다.  그는 “韓國 新外交의 5大基調”에 관해 설명하면서, 아·태지역 다자안보대화는 ASEAN-PMC를 통해 이미 시작되었기 때문에 한국은 이러한 광역적 안보대화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발전을 도모할 방침임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廣域對話의 합의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고, 안보대화가 군비통제나 분쟁해결을 효과적으로 다루기 위해서는 廣域次元의 안보협력체 구성보다는 지역적 類似性이 있는 小地域 單位로 추진될 때 그 실효성이 더 높을 것이라는 판단에서 동북아 내의 “小地域 유럽식 安保協力會議” 형식의 안보협력체 창설을 제시했다. 
또한 한국은 1993년 클린턴 대통령 訪韓時 「新太平洋共同體」 宣言에 따라 지역내 다자안보협력의 실현 가능성이 높아짐을 인식하고, 7월 26일과 27일 양일간에 순수 민간단체인 캘리포니아 대학교 산하의 世界紛爭協力硏究所(IGCC: Institute on Global Conflict and Cooperation) 주관으로 6개국 다자간 안보대화 개설을 위한 San Diego 準備會議 및 10월의 本會議에도 참석하였으며, 이어 1998년 11월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제9차 회의까지 계속 참가하고 있다. 
이처럼 다자간 지역안보협력 문제에 관한 한국의 입장은 점차 긍정적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 轉換期에 놓여 있다.  그 동안의 한국의 정책방향을 검토해 볼 때, 한국은 多者間 地域安保協力問題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정책기조를 갖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첫째, 한·미 안보동맹관계가 손상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다자간 地域安保協力을 추진한다.  둘째, APEC 또는 ASEAN과 같은 기존의 地域協力機構를 토대로 하여 이들 機構들을 안보협력체로 발전시키는 방안을 활용한다.  셋째, 아시아·태평양지역 범위의 다자간 안보협력회의의 개최와 병행하여 동북아 다자안보협력기구의 창설을 별도로 추진한다.  넷째, 다자간 지역안보협력 문제를 對內外的 여건과 상황을 고려하며 대화수준에서 시작하여 段階的이고 漸進的으로 추진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다자간 협력회의를 구성함에 있어 參加範圍에 있어서는 실현 가능성이 높은 동북아 중심의 小地域으로부터 全아시아를 포함하는 廣域으로, 議題에 있어서는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성과를 성급히 기대하기보다는 안보문제에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분야인 環境이나 海洋問題 등 비군사적인 것으로부터 출발하여, 단계적으로 국가간의 신뢰를 구축할 수 있는 군사적인 것으로 발전시키고자 하고 있다.  특히 이러한 安保對話가 실효를 거둘 경우 장기적으로 북한을 太平洋 共同體에 참가시켜 개방을 유도하고, 남북한 관계에 있어서 주도권을 장악하여 궁극적으로 남북한 관계개선과 統一與件을 조성하여 韓半島의 평화와 안정을 정착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2. 韓國의 多者安保協力에 대한 認識의 轉換

전통적으로 한·미간의 兩者同盟은 한반도의 안정을 유지하고 안보를 달성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한국은 그 동안 미국과의 緊密한 동맹관계를 통해서 북한의 南侵意圖를 抑制하여 왔으며, 이를 통해서 안정된 경제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다.  따라서 한국의 입장에서 미국과의 동맹관계는 국가의 安危와 직결되는 매우 중요한 安保手段으로 인식되어 왔다. 이러한 이유로 인하여 한국은 그 동안의 多者間 안보협력 논의가 한·미간의 兩者關係를 惡化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 때문에 多者間 안보협력 논의에 대하여 소극적인 시각을 가지고 대응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다자간 안보협력체 창설문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脫冷戰時代의 도래로 인한 國際秩序의 再定立 현상에 따라 변화를 보이기 시작하였다.
한국이 동북아지역에서의 多者安保對話의 필요성을 최초로 제의한 것은 1988년 제43차 UN총회에서의 ‘동북아 평화협의에 관한 제안’이었다.  그러나 당시 한국의 이러한 제안은 고르바초프 蘇聯 대통령의 아시아 안보회의 구상과 같은 맥락에 있다는 이유 등으로 미국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여 진전이 없었다.  1993년 5월 서울에서 열린 太平洋 經濟協力會議(PBEC: Pacific Basin Economic Council)에서 한국은 新外交의 하나로 지역안보협력의 추진을 적극 천명하였으며, 이 때 한국은 현재 아세안 擴大外務長官會議 주도로 진행중인 다자간 안보협력에 적극 동참할 것과 신뢰회복을 위한 조치들이 광범위한 지역을 대상으로 실행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감안하여 小地域 중심의 「mini-CSCE형 東北亞 多者間 安保對話」의 창설 가능성도 고려하고 있음을 시사하였다.  또한 이 문제는 같은 해 7월 10일 클린턴 미국 대통령 訪韓時 「新太平洋共同體 宣言」에서 밝힌 동북아지역의 多者間 안보대화 구성 발표를 계기로 급진전되었다.
이렇듯 다자간 안보협력기구의 창설에 대한 한국의 안보인식이 消極的 태도에서 積極的 태도로 전환된 背景에는 다음과 같은 점들이 고려되었다고 볼 수 있다.
첫째, 동북아 다자간 안보대화를 통해서 북한의 開放과 改革을 유도하고 북한 核問題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며, 地域協力에 북한을 동참시킬 수 있다는 기대이다.  한국은 1993년 3월 12일 북한의 NPT 탈퇴선언으로 시작된 북한 核問題를 다루는 과정에서 북한의 核威脅과 같은 직접적인 안보문제에 대해 주변국들과 원활한 협조를 해왔으며, 한국은 다자간 대화채널을 개설한다면 地域協力에 북한의 동참을 유도함으로써 북한의 개방과 개혁을 앞당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낙후된 核施設로 인한 核放射能 유출사고 및 김일성 死後 북한내부 분열에 따른 난민발생 가능성 등 비군사적 위협에도 대처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둘째, 相互依存으로 특징 지워지는 새로운 國際秩序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불확실한 동북아지역에서의 안보달성을 위한 장치를 마련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동북아지역은 경제적으로는 괄목할 성장을 이룩하였지만 안보적 불안요소와 긴장요인은 상존하고 있다.  舊蘇聯이 해체되어 긴장이 완화되기는 하였으나, 미국의 지역내 영향력의 약화로 인한 ‘힘의 공백’이 우려되고 있으며, 이로 인한 군사적, 정치·경제적 불안이 증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있는 방안으로 다자간 협력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셋째, 多者間 安保協力의 틀을 구축함으로써 장차 지역내 일본 및 중국의 팽창된 군사적 역할을 牽制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며, 미국의 안보역할 변화에 따르는 불확실성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다는 측면이 고려되었을 것이다.  미국의 지역내 영향력 축소는 중국과 일본의 軍備競爭을 촉발할 수 있으며, 남북한은 물론 지역 전체적으로도 軍備統制를 제도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크게 증대되고 있다는 판단이다.  현재 각국이 군사력 증강에 치중하고 있는 동북아의 특수한 안보구조를 고려할 때, 多者間 安保對話 구성노력이 協力體 수준으로 발전한다면 지역내 각국들의 군사비 규모도 하향 조정될 수 있을 것이며, 각국이 武器購入을 줄이고 軍備競爭을 종식시킨다면 地域 安定化에도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넷째, 지역 내의 경제적 交流擴大와 안정적 발전 및 정치적 안정을 지속적으로 보장하기 위하여 安保協力이 요청되고 있다는 점이다.  아직도 전략적인 對峙와 牽制의 필요성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相互信賴에 기반을 둔 경제교류가 성숙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安保協力을 통한 신뢰가 보장되어야 지속적이고 광범위한 國家利益을 달성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다섯째, 동북아에서 안정된 勢力均衡의 유지는 미국의 참여 없이는 어렵기 때문에 미국이 ‘均衡者’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制度的 裝置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世界戰略上 해외역할의 필요성 감소와 국내정치·경제 우선정책 때문에 종래에 수행했던 동북아지역에서의 安保役割 축소가 불가피한 실정이며, 이 같은 문제를 제도적인 틀 안에서 해결하는 길이 곧 多者間 安保協力體를 구성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동북아에서의 다자간 안보협력은 기존의 兩者安保關係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하고 병행하는 것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이다.
여섯째, 한반도 문제해결과 平和體制 구축 및 통일추진에 유리한 국제적 여건을 조성할 필요성이 있다는 점이다.  남북한간에 이미 합의된 基本協定 등은 地域安保協力의 틀 안에서 보완될 수 있으며, 남북 당사자간의 해결이 어려운 문제의 합의를 촉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이다.  지역내 多者間 安保協力體가 制度化되면 이는 곧 한반도의 平和體制 수립과 통일여건 조성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일곱째, 分斷管理와 통일 이후의 한반도 관리를 보다 平和的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효용성을 갖는다고 보았다.  한국은 한반도에 직접적인 이해와 영향력을 갖는 미국·일본·중국·러시아 위주로 安保對話를 구성함으로써 한반도의 안전에 영향을 미치는 事案에 대해 좀 더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시키는 문제나 北韓核을 평화적으로 이용하는 문제는 南北 兩者간에 해결하기 어려웠던 事案들로 다자간 협력의 틀 속에서 보다 효과적으로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한반도에서 주한미군의 철수시 주변국들의 한반도에 대한 覇權的 영향력 행사를 방지하고 한국의 主權行使와 生存權 확보차원에서 한반도 주변국간의 다자적 안보협력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한국은 동북아지역에서의 不確實性에 의해 발생할 수 있는 위험성을 줄이고 이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도모할 수 있는 방안으로서, 동북아지역의 소규모 OSCE와 같은 형태의 多者間 地域安保協議體의 설립을 찬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한국의 입장 변화는 전통적으로 對美依存的 兩者 동맹관계에만 유지해 왔던 종래의 정책과 비교할 때 매우 큰 변화이며, 새로운 안보문제를 해결하는데는 전통적인 兩者間 安保 메커니즘이 효과적일 수 없다는 점과 多者間 安保協力體制 형성이 새로운 환경에 더욱 효과적일 수 있다는 인식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한반도의 평화를 유지하고 장기적으로 통일한국의 순조로운 이행을 위해서는 북한 核問題의 해결이 매우 중요하다.  북한의 핵무장 가능성은 이 지역 및 전세계에서의 核武器 개발경쟁을 촉발할 잠재적 가능성을 갖고 있으며, 특히 한반도의 평화정착에 결정적인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한국은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미국·일본·중국·러시아 등 동북아 주요국가들과의 외교적 노력을 통한 문제해결을 도모해 왔으며, 이러한 노력은 多者間 安保協力機構의 공식적인 대화의 틀 안에서 더 많은 효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현재 전통적인 군사적 안보개념에서 나아가 경제 및 환경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협인 대기오염 및 해양오염, 이로 인한 기후변화의 위험, 마약문제, 테러 등의 문제가 그 어느 것도 현존하는 兩者間 관계나 어느 一方의 노력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으며, 오직 긴밀한 국제적 협력을 통해서만 해결이 가능하다고 하는 인식이 점차 증가되고 있는 추세에 비추어 볼 때, 한국의 多者間 安保協力 推進은 현실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적절한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 
 

제2절  北韓과 東北亞 地域安保

1. 北韓의 政策과 立場

북한은 多者間 地域安保協力體制 형성이 개방압력이나 人權 및 核武器와 在來式 軍備 등에 대한 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우려하여 기본적으로 다자안보협력에 반대 입장을 취해 왔으며, 또 지역내 다자안보협력 구상을 미국이 아시아에서 사회주의 국가들을 말살시키고 이 지역에서 支配權을 확고히 하려는 企圖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북한이 현 시점에서 다자간 지역안보협력기구의 창설에 반대하고 있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다자간 지역안보협력회의를 통한 방식은 그 동안 북한이 주장해 온 소위 ‘當事者 協商原則’에 위배된다는 점을 들고 있다.  지금까지 북한은 각종 統一 및 군축제의에서 남북한 또는 미국이 참여하는 2者 내지는 3者會談을 선호해 왔으며, 이는 북한의 NPT 탈퇴와 核査察 문제를 둘러싸고 북한이 보였던 남·북한 또는 北·美間의 兩者協商 주장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둘째, 다자간 안보협력회의가 북한에 대한 국제적 壓力手段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국제 안보환경이 북한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는 현실에서 다자간 안보협력회의는 결국 북한에게 추가적인 압력의 수단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실제로 현 시점에서 이 회의에 참여할 동북아의 주변 강대국들 가운데 북한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지지해 줄 국가가 없다는 현실을 고려할 때, 북한으로써는 多者間 安保協力機構 내에서 실질적인 문제가 다루어질 경우 항상 守勢的 立場에 몰릴 수밖에 없으리라는 예측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셋째, 군비통제 및 군축문제에 대해 단계적이고 점진적인 접근을 추구하고 있는 多者間 安保協力 방식은 북한이 주장해 온 신속하고 실질적인 軍縮의 실행과 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북한의 입장에서 볼 때, 多者間 지역안보협력을 통한 접근방법 속에는 지역내 강대국들이 실질적인 군축을 회피하고 지연시키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더구나 정치·군사문제뿐만 아니라 경제, 환경, 문화, 인권 등 다원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는 多者間 지역안보협력 방식은 북한의 급속한 開放化를 초래해 결과적으로 북한체제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고려했을 것이다.
북한은 그 동안 外觀上으로는 “하나의 朝鮮政策”을 표방해 왔기 때문에 1989년에 한국이 제의한 “東北亞 平和協議會” 창설안에 강력히 반대해 왔다.  한국의 제안에 대해 북한은 1991년 1월 13일자 외교부 성명을 통해 “구라파 安全協助機構”를 아시아에 그대로 적용하려는 것은 아시아 실정에 맞지 않으며, 남한의 이러한 제안은 賣國叛逆의 陰謀라고 비난하면서, 아시아의 安全과 平和를 보장하는 안보체제의 先決條件으로서 ① 美國과 러시아가 먼저 군축과정을 시작할 것, ② 미국이 아시아 국가들과의 쌍무적인 군사조약을 폐기할 것, ③ 이 지역으로부터 모든 외국군대와 軍事基地들을 철수할 것,  ④ 미국은 아시아지역의 모든 核武器들을 철수하고 核武器로 威脅하지 않는다는 法的 公約을 할 것, ⑤ 非核地帶로 만들려는 아시아 국가들의 노력을 방해하지 말 것 등 기존에 해왔던 주장을 되풀이하여 왔다.
북한은 소련이 제안한 각종 아시아 地域 安保協力 구상에 대해서도 반대입장을 표명했다.  북한은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全아시아 集團安保會議」나 「블라디보스톡 宣言」을 평화 우호적 發起로 적극 지지하는 태도를 보였으나, 1990년 6월 샌프란시스코에서 韓·蘇頂上會談을 계기로 양국 수교가 可視化되자 1990년 8월 외교부 성명을 통해 소련이 추구하는 「亞太地域 多者協力體制」 構想은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부정적 입장과 1990년 9월 세바르드나제 소련외상의 「全아시아 外相會談」 개최 제의를 ‘非現實的 提案’이라고 거부하였다.
그러나 북한은 1990년 7월 캐나다 Clark 외상의 “北太平洋 安保對話” 제안과 1991년 7월 27일 호주 Evans 외상의 “아시아 安保協力會議” 제안에 대해서는 반대입장을 나타내지 않았으며, 국제적 군축회의와 신뢰구축회의에 참가하는 등 多者間 安保對話와 관련하여 一貫性없는 태도를 보여왔다.  북한은 또한 1991년 4월 캐나다에서 개최한 北太平洋 安保協力 學術會議와 관련하여 2명의 캐나다 학자의 訪北을 허용하였고, 그 학술회의에 大使級 人事 3명을 참석시켰다.  1990년 7월부터 11월 동안의 UN 軍縮 硏修過程에 북한의 官吏가 참여하였고, 1991년 1월 네팔의 카투만두에서 개최한 UN 軍縮 세미나에 북한 대표가 참여하였으며, 同年 2월 비엔나에서 개최한 軍縮세미나에도 북한 대표가 참석하였다. 
그러나 북한의 이러한 태도는 캐나다 및 호주와의 외교관계의 改善을 위한 측면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으며, 한편으로는 南·北韓의 軍縮協商에 대비하여 북한이 軍縮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된다.  또한 북한은 1993년 7월에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 샌디에고 대학에서 개최된 「東北亞協力對話」를 위한 준비회의에 UN주재 부대사와 서기관을 파견, 세계에서 유일하게 冷戰地域으로 남아 있는 東北亞地域의 군사적 대결을 방지하고 긴장해소를 위하여 多者間 安保協力體 구성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표명하는 등 긍정적 입장을 보였으나, 이 자리에서 팀스피리트 훈련 영구 폐지, 한미 兩者同盟의 불필요성, 주한미군의 철수 및 10만명 軍 減縮案을 再次 주장함으로써 다자간 안보대화를 북한의 정치적 立地强化와 外交攻勢의 場으로 활용하려는 의도를 보였으며, 그 이후 10월 제1차 本會議부터 1998년 제9차 모스크바 회의까지 전혀 참석하지 않고 있으나 이 회의에 대한 관심은 계속 보이고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북한은 지역내 多者間 安保協力 論議에 대해서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의 향후 태도는 이러한 부정적 입장에도 불구하고 북한 내부의 사정과 탈냉전기의 東西 和解와 協力의 시대적 상황변화에 따라 消極的으로나마 支持의 입장으로 변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된다.

2. 北韓 參與의 必要性

탈냉전기에도 동북아지역에서 가장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지역은 한반도로서 남·북한의 對峙狀態가 지속되고 있다.  냉전시기의 理念的 對立이  아무런 변화가 없이 記念碑的으로 남아 있는 이러한 對峙狀況은 북한이 구소련을 위시한 東歐共産圈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우리식 사회주의’로 閉鎖된 사회를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지도체제는 東歐圈의 沒落과 심지어 중국의 개방도 비판하면서 그들의 체제의 지속을 고집하고 있지만, 食糧難을 비롯한 경제의 어려움 때문에 멀지 않은 장래에 어떤 형태이든 간에 점진적인 開放政策에 호응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북한이 주장하고 있는 미국과의 關係改善에서 미국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게 작용할 것이며, 이에 따른 한국의 對美關係의 定立이 신중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의 참여가 동북아 地域安保協力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남·북한 기본관계의 변화 없이는 동북아의 안보를 고려할 수 없으며, 이러한 뜻에서 한국은 이 지역에서의 성공적인 다자안보협력을 위하여 북한이 다자협력에 참여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多者間 安保協力機構의 설립에 대한 북한의 부정적 태도에도 불구하고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사실들이 북한으로 하여금 多者間 地域安保協力에 참여하게 하는 필요성으로 작용하고 있다. 
첫째, 國際秩序의 추이를 볼 때 지역내 多者間 安保協力會議의 창설이 구체화될 경우 북한은 불참으로 인한 國際的 고립을 自招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地域安保協力을 통하여 駐韓美軍의 철수와 南北韓의 軍縮을 달성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될 수도 있다. 
셋째, 그 동안 북한 안보에 중대한 역할을 담당해 왔던 北·中, 北·러 동맹조약의 실효성에 대한 懷疑的 인식으로 인하여, 이를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자 할 가능성이 있다. 
넷째, 韓·美間의 동맹관계를 이완시키고, 北·美 및 北·日間의 관계를 개선하여 국제적 고립을 탈피하기 위한 방안으로써 多者間 對話의 선택이 필요하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북한이 현재 지역내 多者間 安保協力 論議가 自國의 이익에 불리하게 작용하게 될 것이라는 판단에 따라 부정적인 입장을 보여 왔으나, 현재 진행되고 있는 國際秩序와 地域內 安保環境의 변화, 그리고 多者間 安保協力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됨에 따라 북한의 입장은 소극적이나마 支持의 입장으로 변화하게 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으로서는 동북아 地域安保를 위한 이 지역에서의 성공적인 다자안보협력을 위해서 북한이 참여할 수 있는 여건 조성에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북한의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안은 북한의 疑懼心을 근원적으로 제거하고, 실질적으로 북한이 대화 내지는 협력체, 또는 이와 관련된 다자협력에 참여함으로써 얻는 실질적인 所得이 참여하지 않는 것보다 훨씬 많다는 확신을 주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이 취할 수 있는 우선적인 역할은 동북아 地域安保의 다자간 협력을 전략적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북한에게 한국정부와의 협조가 없이는 결코 북한이 필요로 하는 미국과 일본과의 관계개선이나 경제적인 惠澤을 얻을 수 없음을 인식시켜 주는 것이다. 
북한의 참여를 유발시키기 위해서는 결국 북한의 核開發이나 多量殺傷武器開發 및 輸出抛棄에 대한 구체적인 補償을 시도하는 방안이 연구되어야 한다.  북한의 악화된 경제사정에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구체적인 靑寫眞을 제시함으로써 북한의 핵개발과 미사일 수출포기를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현재 제네바 북·미회담에서의 合意事項에 따라 북한의 핵동결 조건으로 북한에 대한 輕水爐 건설사업이 한·미·일의 협력으로 추진되고 있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代案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지역안보를 위한 다자안보협력에 불참할 경우, 북한을 제외한 周邊 5개국간의 대화를 지속함으로써 북한에 대한 國際的 壓力을 증대시키는 방안을 參與 觸媒劑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궁극적으로 북한의 참여를 自發的으로 유도하기 위해서는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사용해야 하며, 안보협력에의 참여가 북한의 生存에도 유익하다는 것을 인식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최근의 북한의 태도는 동북아지역에서의 다자간 안보협력과 관련하여 주목할 만하다.  북한이 北·美 高位級會談이나 제네바의 4자 회담에 긍정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은 현재의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것일지라도, 북한의 이러한 태도변화는 주변국과의 對話의 必要性을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에 한국은 북한을 국제사회에 성공적으로 끌어 들여 開放과 改革으로 유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삼아 신중한 政策과 態度로 대처해 나가야 할 것이다.  유럽에서 OSCE과정에서 동·서독이 보여 주었던 것처럼, 남·북한의 政策 여하에 따라 한반도의 緊張緩和와 協力增進뿐만 아니라 동북아에서의 평화와 안정에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동북아지역에서 다자간 안보체제를 구성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북한의 開放과 改革을 유도하고 동북아지역의 협력과정에 북한을 동참시켜 남·북한의 대화채널을 확대시킨다는 의미가 있다.  북한의 핵문제을 포함한 懸案問題는 다자안보협력에서 논의할 수 있는 議題로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화의 노력을 통해 남·북한의 긴장완화와 和解雰圍氣를 조성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남·북한의 다방면의 交流를 증진시켜 兩者가 동시에 다자안보협력체제에 참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한 측면에서도 한국과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4자 회담은 그 성과에 대한 기대가 크며, 이 성과를 토대로 동북아지역에서의 다자안보협력기구의 설립 기초를 이룰 수 있다는 기대도 가지게 된다.
이러한 긍정적인 방향으로의 남·북관계의 전환을 위해 지적해야 할 점은 유럽안보협력에서 兩獨逸이 보여준 적극적이면서도 주도적인 先例에 대한 교훈을 남·북한에 요구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까지의 남·북한의 관계는 현실적으로 적대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일 뿐만 아니라 協商過程 역시 일시적일 수밖에 없었다.  만약 이러한 관계가 지속된다면, 동북아에서 다자간 안보협력기구가 설립된다고 하더라도 이 협력기구를 통일의 밑거름으로 만들기보다는 現狀態를 固着化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서 남·북한의 대화와 협력은 동북아지역에서의 다자안보협력의 기본이 되며, 북한의 참여는 매우 필수적인 前提條件이 된다.  남북한이 동시에 참여하는 동북아지역에서의 다자안보협력의 테두리 안에서 한반도의 통일문제를 논의한다면 한국이나 북한의 상호 自尊心의 損傷없이 이 문제의 긍정적인 해결을 가져올 수 있는 展望도 없지는 않다.  남북한의 합의에 의해 동북아 다자안보협력에 참여한다면, 이러한 다자간 협력기구 내에서 남·북한은 주변국이 아니라 중심국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제3절  多者安保協力에 대한 關聯國의 立場

지금까지 한반도 안보의 당사국인 한국과 북한의 다자안보협력에 대한 政策과 立場을 검토하였다.  그러나 동북아 지역안보문제는 남·북한만의 문제가 아니므로 이에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한반도 주변국인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는 이 지역에서의 다자안보협력에 대하여 어떠한 정책과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를 고찰해 보고자 한다.

1. 美國의 新太平洋 戰略과 多者安保

美國은 지리적으로 한반도에 인접해 있지는 않지만 제2차 세계대전의 勝戰國으로서 한반도 남쪽에 대한 戰後管理와 경제지원으로 영향력을 행사해 온 국가로서, 이 지역에 대한 그간의 投資와 努力을 고려하여 한반도를 쉽게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 미국은 한반도에 駐韓美軍을 계속적으로 주둔시킴으로써 이 지역에서의 戰爭抑制와 평화유지를 달성하여 한반도를 安定的으로 管理하는데 커다란 관심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미국은 한반도 주변국인 중국, 러시아, 일본 등 어느 한 국가에게도 한반도에 대한 주도권 행사를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韓美防衛條約에 의한 한반도 관리를 주장하던 종전의 정책에서, 탈냉전시대를 맞이하면서 화해와 협력의 차원에서 이 지역에서의 다자간 협력 같은 제도적 장치의 설립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따라서 한반도 주변의 多者間 安保協力 問題는 미국의 참여와 동의가 없이는 사실상 어려울 것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이 문제에 대한 미국의 태도는 지역내 多者間 安保協力 달성의 關鍵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은 동북아를 포함한 아시아·태평양 지역내 다자간 안보협력문제에 대하여 지역내 국가들 가운데 가장 강력한 반대의사를 밝혀 왔던 국가로, 클린턴 행정부 출범 이전까지만 해도 동북아 및 아·태 지역 다자간 안보협력체제 창설에 대하여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해 왔다.  미국은 韓·美防衛條約 및 美·日安保條約 등 기존의 양자간 동맹관계 유지가 自國에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이를 代替할 다자간 안보협력이 자칫 미국이 지금까지 이 지역에서 누려왔던 旣得權의 상실로 이어질 가능성을 두려워하여 다자간 안보협력의 필요성에 대하여 반대의 입장을 견지해 왔다.
또한 미국은 동북아지역에서 기존의 韓·美, 美·日 동맹조약을 바탕으로 하여 양자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한편, 이 지역에서 각국 세력의 지배자적인 調停者로서 미국의 역할을 부각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강했다고 볼 수 있으며, 과거 소련의 계속적인 동북아지역의 집단안보체제 창설 제의를 미국의 海軍力 優位를 상쇄하고자 하는 조치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多者安保協力體 구성에 부정적 입장을 보여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舊蘇聯의 붕괴와 東歐圈의 자유화 등 세계 안보환경의 변화로 미국의 亞·太地域 安保政策도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계기를 맞이함에 따라 미국은 地域紛爭의 확대를 억제하고 예방외교차원에서 분쟁 해결을 도모하기 위해 UN을 통한 평화유지활동을 적극 지원할 뿐만 아니라 세계적 차원의 안보유지에 소요되는 경제적 부담을 줄이고, 냉전종식 이후 새로운 안보환경 변화에 보다 효율적으로 적응하기 위해 점진적으로 해외주둔 군사력을 감축하고, 아시아에 있어서도 일정한 수준의 地域內 多者間 安保協力體의 구성을 수용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정책변화는 기존의 戰略的 틀을 손상하지 않으면서 새로운 안보환경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代案으로 동북아지역에서도 多者安保協力 方案을 고려하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동북아지역에 대한 미국의 정책변화는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미국의 ‘2+4’ 형식의 協議體 결성 제안에서 알 수 있다.  미국은 당시의 남북회담 결과의 국제적 보장과 공동의 안보 관심사를 활성화하기 위해 1991년 11월 ‘亞·太經濟協力閣僚會議’(APEC: Asian Pacific Economic Cooperation) 서울회의에 앞서 이 提案을 내놓았다. 
미국은 북한 核威脅을 해소하기 위해 한반도와 관련 있는 강대국들이 ‘2+4’ 형식을 통해 영향력을 발휘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으며, 남북대화의 지원, 한반도의 긴장완화, 공동안보 관심사의 協力促進, 남북간에 체결한 협정의 보장 등을 동회의의 주요목표로 제시했다.  이러한 미국의 한반도 문제에 관한 ‘2+4’ 구상은 多者的 接近을 추진하고자 하는 미국 정책변화의 첫 번째 신호였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은 “한반도는 동아시아에서 軍備統制의 이니셔티브가 필요한 곳이며, 유럽식 신뢰구축조치 및 궁극적으로 유럽식 在來式武器 減縮措置가 가능한 지역이라고 밝히면서, 유럽에서 미국 주도하의 NATO와 汎유럽적 安保포럼인 CSCE의 공존과 유사하게 동북아에서도 兩者間의 관계를 중심으로 한 기존의 동맹관계를 유지하는 가운데 選別的 이슈에 대해 중국, 러시아 등과 다자적으로 안보문제를 협의함으로써 지역 安保政勢에 적응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와 같은 견해는 이미 Solomon 前국무성 동아시아담당 차관보가 1990년 5월 「샌디에고 宣言」에서 제시한 ‘6者會談’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며, 이 제안에서 Solomon은 특히 북한 核問題를 주변 4대강국의 공통된 우려사항이라고 강조한 바 있었다.  당시 이러한 提案들이 다자간 안보협력의 제도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으며, 단지 安保問題의 共同解決을 위한 방법을 모색하고자 함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으나, 미국의 이러한 입장변화는 기존의 兩者同盟만을 고집해 왔던 사실을 놓고 볼 때, 이 지역에서의 획기적인 정책 변화를 나타내는 제안이었다.
이러한 다자간 안보협력 문제에 대한 미국의 입장변화는 국제질서의 변화와 클린턴 行政府의 登場으로 보다 肯定的 입장을 갖게 되었다.  이 문제에 대한 미국의 공식적인 입장은 여전히 소극적인 것이 사실이지만, 민간연구소들을 비롯한 미국의 비공식적인 채널에서는 동북아를 포함한 亞·太地域 多者間 安保協力體 구축의 필요성에 대한 주장이 증가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 例로 1992년 7월, 스티븐 솔라즈 미하원 亞·太소위원장이 “美國의 참여가 보장된다면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亞·太地域에서도 유럽과 같은 集團安保協議體의 구성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밝힌 것을 비롯해서, 미국의 저명한 연구 그룹인 카네기 財團은 클린턴 행정부가 앞으로 펼치게 될 外交政策 方向과 관련된 報告書에서 東亞·太地域에서 쌍무적인 안보협정이 지속되야 하지만 지역적·세계적인 정세변화에 따라 개편이 불가피하다고 前提하면서, 미국은 이 지역의 지역안보협의를 위한 ‘多者間 포럼’을 지원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 밖에도 아시아재단이 발간한 ‘아시아에서의 美國의 役割’이라는 보고서 역시 미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안보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多者間 포럼’을 지원해야 하며, 韓半島 문제해결에 進展이 이루어지면 北太平洋 地域에서 準政府間 대화포럼이 성립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하였다.
이러한 國際政治的 氣流에 편승하여 클린턴 행정부는 “全아시아를 포괄하는 集團安保協力機構를 5년 이내에 설치할 방침”이라고 밝힘으로써 미국의 아시아지역에서의 安保政策의 변화를 예고했다.  미국의 다자안보에 대한 입장 표명은 먼저 1993년 3월 미국무부 東亞·太 擔當인 Winston Lord 次官補가 안보협의를 위한 다자간 포럼의 필요성을 제기함으로써 나타났고, 동년 7월 Warren Christopher 국무장관은 아세안 擴大外務長官會議에 참석하여 아·태지역에도 유럽의 CSCE 형태의 다자안보회의가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피력한 바 있다.  또한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도 1993년 7월 일본과 한국을 방문하였을 때 「新太平洋 共同體」(New Pacific Community) 실현을 위한 4대 과제를 제시하면서 共同安保 挑戰에 다자안보대화의 필요성을 지적하였다.  미국은 이를 실천하는 방안으로써 동년 10월에 샌디에고의 캘리포니아 대학의 부설인 世界紛爭協力硏究所(IGCC: Institution on Global Conflict and Cooperation) 주관 하에 동북아의 관련국들간 비정부차원(Track-II)의 「東北亞協力對話」(NEACD: Northeast Asia Cooperation Dialogue)를 시작하여 현재까지 미국이 주도적으로 이를 추진하고 있다.
이처럼 미국이 지역내 多者間 安保協力問題에 대해 제한적이지만 전향적 자세로 돌아서고 있는 이유로는 우선 대폭적인 軍事費 삭감요구로 인한 東北亞에서의 군사력 감축에 따른 이 지역에서의 영향력 감소를 보완하고, 냉전종식 후 빚어지고 있는 힘의 공백상태에 따른 東北亞 地域國家들의 군비경쟁을 규제할 공식적인 장치가 요구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는 미국의 전력구조 개편계획에 따라 불가피한 東北亞에서의 군사력 감축이 미국의 일방적인 감축으로 끝나지 않고, 유럽의 경우와 같이 더욱 안정된 형태의 지역내 軍備均衡으로 이어질 수 있는 방안 모색의 결과로 볼 수 있다.  또 다른 이유로는 地域紛爭의 억제와 地域內 核武器 등 대량살상무기의 확산방지를 일차적 목표로 하고 있는 ‘新防衛戰略’의 채택에 따라 지역내 多者間 協力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는 점이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해 볼 때, 미국은 탈냉전시대 東北亞 및 亞·太地域에서 큰비용을 지불하지 않으면서 기존의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兩者 同盟關係를 보완하는 차원에서 다자간 안보협력 문제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분석된다.  따라서 미국은 지역안보대화 및 아·태 경제협력체를 발전시키는 등 다양한 多者間 協力體制를 구축함으로써 아·태지역에서 均衡者 및 調整者 역할을 담당하려 할 것이며, 지역내 문제에 대처함에 있어서는 기존의 兩者關係를 중요시하면서 ‘新太平洋 共同體’ 구상에서 강조하고 있는 지역내 경제·안보문제에 대한 다자간 협력을 점진적으로 확산시키는 입장을 계속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2. 日本의 軍事的 役割 增大

한반도에서의 安定이 自國의 防衛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보고 있는 일본은 한반도에서 힘의 空白이 생길 경우 중국, 러시아 등 지역내 강대국에게 한반도에서의 主導權 상실을 원치 않을 것이며, 또한 大陸勢力의 남방진출 저지를 위하여 이를 牽制할 것이다.  따라서 일본의 基本立場은 한반도를 위시한 동북아지역의 안정으로 그들의 안보와 經濟富國의 우세 유지를 희망하는 차원에서, 이 지역에서의 협력체제 형성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최근 日本은 향후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변화와 다양한 지역내 문제들에 대처하기 위해 기존의 兩者間 안보관계를 보완하는 多者間 安保對話와 協力에 적극적인 입장으로 전환하고 있다. 
일본은 1990년까지만 해도 地域內 多者間 安保協力問題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해 왔는데, 이는 戰後 美·日安保條約을 자국 안보의 根幹으로 하여 왔던 일본에게 다자간 안보협력으로의 접근이 기존의 미·일安保同盟體制에 역기능적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는 점, 그리고 러시아와의 북방도서 領有權問題 등 雙務的 성격의 주요 현안에 외부의 介入을 초래하여 오히려 문제해결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런데 일본의 이러한 부정적인 입장은 1991년 12월 소련의 붕괴와 탈냉전시대의 도래로 新國際秩序의 기류가 형성되면서 동북아 및 亞·太地域에서의 多者間 安保協力體制에 관한 긍정적 태도로 바뀌기 시작하였다.  일본은 1991년 7월 나카야마 타로 外相이 ‘아세안 확대외무장관회의’에서 ‘나카야마 提案’(Nakayama Initiative)을 발표하면서 多者安保協力에 적극적인 관심을 표명하기 시작하였다.
나카야마 외상은 매년 정기적으로 아세안 擴大外務長官會議의 실무자급 회의에서 亞·太地域의 안보문제를 논의하자고 제의하였다.  이러한 提議의 배경은 亞·太地域에서 그들의 고립을 만회하고, 국가간에 多者間 安保機構의 구상이 논의될 때 일본이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할 立地條件을 마련하고, PKO 法案 통과를 계기로 일본의 政治的 影響力을 확대할 수 있는 합법적인 메커니즘을 만들어야겠다는 계산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이 提議는 사전협의가 없었기 때문에 ASEAN 국가들과 共感帶를 형성하지 못했으며, 한·미 등이 留保 내지 否定的 反應을 나타냄으로써 채택되지는 못했다.
이러한 나카야마 외상의 제안은 1년이 지난 후인 1992년 6월 22일 미야자와 수상의 「亞·太安保機構」안의 제의에 의해 구체화되었다.  미야자와 수상은 脫冷戰時代에 있어서 일본 외교의 주요과제로서 미국, 중국, 러시아가 참여하는 아시아의 安保機構 창설에 협조할 것을 강조하였으며, 이를 위한 방안으로 아시아 多者間 安保協力機構 창설을 제안하였다.  미야자와는 기자회견을 통하여 “미국·러시아·중국 등이 포함된 아시아 전체의 새로운 安保協力會議를 구성하는 것이 일본 외교의 중요한 과제이다”라고 전제하면서, “아시아의 경우에도 유럽의 CSCE와 같은 多者間 地域安保協力會議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미야자와 수상은 1993년 1월 16일 ASEAN 순방 중에 발표한 소위 「미야자와 독트린」에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안보를 위한 장기적 비전이 필요함을 전제하면서, 이 지역 국가들이 政治·安保對話를 나누는데 일본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용의가 있음을 밝히고, 아시아·太平洋地域 安保協力會議 창설을 제안하는 등 일본의 지역내 다자간 안보대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일본이 이와 같이 多者間 安保協力體의 창설에 적극적 입장을 보이는 주된 이유는 구소련의 붕괴와 冷戰終熄으로 인한 지역내 안보환경의 급격한 변화에 따라 기존의 雙務的 安保의 틀로는 대응할 수 없는 다양한 안보문제가 대두되고 있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미국의 軍事戰略 변화에 따르는 아시아지역에서의 美軍撤收 등 미국의 安保公約 변화 가능성과 중국이 군비증강 및 軍現代化 추진으로 지역내 軍事强國으로 부상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따라서 일본은 이러한 상황에서 地域安保協力會議를 자국의 지역내 역할 강화와 영향력 확대를 위한 합법적인 발판으로 활용하려는 意圖가 있으며, 또한 多者間 安保協力會議를 통해 중국의 군비증강 및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려는 측면이 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지금까지 日本의 지역내 多者間 安保協力體 창설 제의에 관한 내용들을 분석해 볼 때 두 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대상지역을 東北亞와 같은 小地域이 아닌 아시아·太平洋 전체를 범위로 설정하고 있는 점과 ASEAN-PMC 등 旣存의 지역기구를 활용하려고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이 자국의 안보에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동북아에 관심을 기울이기보다는 이처럼 아시아·太平洋 전체를 대상범위로 설정하고 있는 것은 일본의 영향력이 강한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地域役割 확대를 위한 발판으로 하여, 일본의 역할 확대에 반대하는 한국과 중국을 견제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판단된다.  이러한 의도는 ASEAN과 APEC 등 기존 地域機構를 활용하려는 데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이 機構들은 일본의 영향력이 다른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地域機構들이므로 향후 일본이 지역안보협력회의 내에서 주도권을 잡는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해 볼 때, 일본은 동남아 및 아·태지역에서 경제뿐만이 아니라 政治·安保領域에서도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해 나갈 것이라는 확고한 意志를 표방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며, 多者間 安保對話를 성사시켜서 일본이 軍事大國化를 企圖하고 있다는 기타 아시아 국가들의 우려를 稀釋시키는 동시에 자국의 정치적 영향력을 高揚시키려는 의도가 내재되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脫冷戰時代 이후 미국이 점차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군사력을 감축하려는 움직임과 관련하여, 미국과의 安保同盟關係를 중요시하면서 한편으로는 점차 지역적 수준에서 자국의 안보역할을 확대해 나가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일본의 움직임은 동남아지역과의 광역적인 經濟安保協力 對話通路를 확대하여 국제적 지위와 역할을 증진시키려는 데에서 잘 나타나고 있으며, 이를 위하여 局地的 地域紛爭의 문제는 당사국간의 해결을 촉구하는 한편, 지역전체의 안보문제에 관해서는 自國에 대한 반대감정이 적고 일본이 영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ASEAN -PMC를 통한 廣域的 대화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이 동북아보다는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의 다자안보협력에 더 관심을 가지는 또 다른 이유는 동남아지역에서 일본이 만들어 놓은 經濟協力을 基盤으로 정치적 신뢰구축과 지역내 覇權掌握을 위한 기반조성으로 활용할 名分을 다자협력체제라는 메커니즘을 통해 찾아보자는 것이다.  일본에게는 동남아지역이 동북아지역보다 부담이 적은 곳이며, 또 정치적, 경제적 마찰이 크지 않다.  또한 동북아지역에서는 그들이 다자협력체를 시도할 정치적 信賴構築도 되어 있지 않고, 주도할 경우 그 意圖를 의심받을 가능성이 높으며, 실제 추진될 정도로 적극적인 협력을 유도해 내기도 어렵고, 나아가서는 현재로서는 추진되어도 일본으로서 크게 얻는 바가 없으며, 사실상 적극적으로 나서서 추진할 필요성조차도 못 느끼고 있다.  따라서 일본이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다자협력체제는 동남아를 중심으로 하는 經濟中心의 協力體制이며, 반면에 동북아 국가들이 당면하고 있는 복잡한 안보문제 해결을 위한 安保協力에는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일본은 脫冷戰時代에 있어서도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軍事力 유지가 일본의 안보와 지역 내의 軍備競爭과 地域紛爭 발생의 억제를 위하여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이를 위하여 미국과의 協力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나갈 것으로 보여진다.  따라서 미국의 주도로 동북아지역에서의 多者間 安保協力이 제안되어 추진될 경우 소극적이지만 참여할 餘地는 충분히 있다고 본다.  특히 駐韓美軍 문제와 관련하여 東北亞에서의 안보문제가 이슈로 대두될 경우 일본은 그들의 방위문제와 관련하여 적극적인 입장을 보일 수도 있다.


3. 中國의 全方位 安保政策

中國은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 한반도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여 왔으며, 특히 한반도 분단 이후에는 북한에 대한 理念的 宗主國으로서 절대적 影響力을 행사해 왔다.  따라서 중국은 한반도의 통일과 같은 地域安保秩序의 변화에도 이 지역에 대한 영향력 내지는 主導權 行使를 쉽게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한국과의 國交正常化로 경제협력 등 관계개선은 장차 한반도에서의 상황변화시에도 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중국은 기본적으로 현 국제질서가 脫冷戰과 多極化의 방향으로 발전되고 있으나 미국을 중심으로 한 覇權主義와 强權政治的 경향이 여전히 남아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  특히 중국은 러시아 및 동유럽 국가 등의 경제위기, 사회불안, 민족·종파간 충돌 및 난민문제 등 冷戰體制 와해 이후 새로운 矛盾이 유발되고 있어서 국제질서가 결코 안정적이지 못하며, 이러한 국제질서에 協力과 葛藤의 요소가 당분간 계속 竝存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동북아 정세에 대한 중국의 認識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중국은 동북아지역 세력균형이 자국에게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동북아지역은 舊蘇聯의 붕괴 후 미·소를 중심으로 했던 양극체제가 瓦解되고 美·日·中·러 등을 주축으로 하는 多極體制가 새로이 형성되고 있으며, 이 지역에서 중국과 일본의 역할은 상대적으로 증가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북한의 「核擴散禁止條約」 탈퇴 선언 이후 북한 核問題 해결과정에서 중국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게 인식되어 왔던 사실로 잘 뒷받침된다.
둘째, 주변국과의 善隣關係 강화로 자신의 安保環境이 과거 어느 때보다도 개선되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  러시아의 국경선 지역에 주둔해 있던 러시아 병력의 감축과 經濟協力을 통한 상호 신뢰회복 노력, 그리고 1991년 러시아와의 國境問題에 관한 조약을 체결함으로써 紛爭의 가능성을 해결하였으며, 과거 敵對關係에 있었던 인도, 베트남, 한국 등 주변국과 관계 정상화를 이룸으로써 주변국들에 의한 安保威脅이 완화되었다고 인식하고 있다. 중국은 이러한 善隣外交에 전략적인 중요성을 부여하고 있으며, 중국 지도자들 역시 중국이 亞·太地域의 평화를 보장하고 安定者(stabilizing force)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데 높은 가치를 두고 있다. 
셋째, 중국은 미국의 지역내 唯一 覇權國 지위의 유지 의도와 중국의 人權 問題 및 民主化 問題에 대한 미국의회로부터의 압력, 미국 및 프랑스의 대만에 대한 전투기 판매 결정과 클린턴 행정부의 對中 人權改善 요구, 그리고 일본의 캄보디아 파병과 지역내 多者安保機構 설립 주장 등 政治·軍事的 역할증대 시도가 장기적으로 중국의 이익을 저해하고 안보를 직·간접적으로 위협하는 요소로 작용하게 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넷째, 중국은 南沙群島와 釣魚臺列島의 영유권을 둘러싼 분쟁, 대만의 분리 독립 움직임 및 북한 核問題 등으로 인하여 자국의 利益이 위협을 받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지역내 영향력을 유지·확대하고자 하는 중국은 이 문제들이 국제화되는 것을 기본적으로 반대하고 있으며, 對話와 協商을 통해 問題가 해결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과거 중국은 多者間 安保協力體 창설에 관한 지역국가들의 주장을 중국에 대한 包圍戰略의 일환으로 간주하여 기본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따라서 중국은 동북아를 포함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多者間 安保協力體를 창설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최근 지역내 국가들간에 활발한 提案 및 論議가 진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와 관련한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亞·太地域의 복잡한 領土分斷과 局地紛爭 문제를 하나의 多者安保의 틀 속에서 해결하는 것은 어렵다는 인식 하에, 중국은 우선 兩者關係의 개선에 의해 지역내 국가들간의 信賴增進과 緊張緩和를 이룩한 다음에 多者協力을 신중하고도 점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던 것이다.  중국이 아직 지역내 문제에 發言權을 크게 행사할 수 없는 처지에서 자신의 利害가 결려있는 지역문제가 국제화되기보다는 當事者 解決이 더 國益에 부합된다고 판단하여 왔던 것이다. 
특히 중국은 한반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반도 주변 강대국들이 ‘2+4’ 형식의 다자안보포럼을 형성할 것을 제의한 미국의 主張이 한반도 및 동북아에서 중국의 旣存 發言權을 制約하는 요인이 될 가능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이것이 先例가 되어 향후 대만이나 南方島嶼問題를 해결하는데 있어서도 미국 등 강대국들이 간섭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하게 될 것으로 인식하여 동북아에서의 多者安保協力을 지지하지 않았다.
또한 중국은 亞·太지역이 지닌 特殊한 事情(이념대립 지속, 영토문제와 분단문제 등 현안 미해결, 문화적 다양성 등)을 이유로 CSCE와 같은 형태의 包括的 協力體 형성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보여 왔다.  중국은 아·태지역에 하나의 포괄적인 안보협력체를 구축할 경우, 이는 지역적 특성에 附合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아·태문제에 대한 강대국들의 간섭을 야기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한 CSCE형 다자안보가 정치군사적 현상의 認定을 前提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구소련과 동남아 국가들과 領土紛爭을 겪어 왔던 중국이 이를 수용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분석된다.  또한 중국은 아·태지역의 다자안보협력체가 중국을 假想敵으로 하게 될 가능성이 많다고 판단하여 왔으며, 다자안보협력체에의 참여는 동북아를 포함한 아·태지역에서 중국의 影響力을 제한하는 결과가 될 가능성이 많다고 이해하여 왔다.
이러한 중국의 多者間 安保協力體 창설에 관한 否定的 立場은 중국의 軍事戰略과 軍縮政策의 성격을 미루어 볼 때 확연해진다.  중국이 현재 추진중인 군비증강계획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포함한다.  첫째, 중국의 입장에서 군비증강 및 군사현대화는 중국 軍事戰略의 새로운 목표로 등장한 ‘制限的 地域戰爭’ 수행의 대비와 관련해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다.  둘째, 脫冷戰과 양극체제 종식의 새로운 국제질서에서 강대국으로서 지위 확보 문제는 중국의 중요한 國家懸案으로서, 이는 군사력의 뒷받침을 前提條件으로 하고 있다.  셋째, 중국은 秩序再編期를 맞이한 동북아에서 地域强國으로서의 영향력 확대에 힘쓰고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地域强國에 상응하는 현대적인 군사력이 필요한 실정이다.  이러한 세 가지 의미에서 중국이 자국의 기존 군사력 및 현재 추진중인 軍備增强計劃을 유지하고 보호하는 것은 중국 軍備統制 및 軍縮政策의 중요한 목표로서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과제인 것이다.
실제로 중국은 自國 군사력에 대한 실질적인 減縮이나 統制 등과 같은 국제적 軍縮 의무가 부과되는 군축회담 및 조치에 참여를 거부해 왔으며, 이에 따라 地域內 多者間 安保協力機構 창설문제 역시 自國의 기존 군사력 유지 및 군비증강계획 추진에 장애요소가 된다고 판단하는 한 중국이 반대 입장을 취하게 될 것임을 추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뿐만 아니라 동북아지역에서의 多者間 安保協力體 창설이 중국의 군비증강에 실제로 가장 큰 통제와 제한이 부과될 수밖에 없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중국으로 하여금 多者間 地域安保協力機構 창설문제에 부정적인 태도를 갖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중국의 認識과 立場에도 차츰 변화가 보이기 시작했다.  중국은 脫冷戰時代에 중국의 군사력 증강에 대한 주변국의 우려를 불식시켜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으며, 地域紛爭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周邊國家들의 다변적인 協力趨勢에 더 이상 무관심할 수 없는 입장에 서게 되었다.  중국은 아·태지역 국가간 경제협력이 확대되고 경제적 상호 依存度가 심화됨으로써 지역내 국가들이 共同繁榮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고, 이는 안보영역에서 지역국가간 보다 많은 共通 認識을 갖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고 보고 있다.  아울러 중국은 지난 십여년간 추진해 온 改革開放政策 결과로, 대내적으로 정치·경제적 安定과 繁榮을 이룩하고 대외적으로도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게 됨으로써 지역 多者安保協力體 형성이 과거와 같이 중국을 고립시키거나 敵對視할 가능성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게 되었다.
따라서 중국은 최근 들어 地域紛爭要因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다자간 安保協力體 創設 構想에 점차 共感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특히 중국은 자국의 군사력 증대에 대한 주변국의 憂慮를 拂拭시키고 일본의 軍事大國化를 견제할 필요성을 갖고 왔으며, 經濟發展을 위해 주변환경의 安定이 요구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지역내 다자안보협력체 형성 구상에 支持態度를 보일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아울러 국가간 相互依存關係 深化와 환경과 마약문제 등 세계적 문제에 대한 國際的 協力의 증대로 UN 등 國際機構의 役割이 확대되고 있는 바, 국제사회에서 영향력 증대를 모색하고 있는 중국은 국제기구의 안보협력 논의에도 적극 동참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중국이 공식적으로 아시아 및 태평양지역의 共同安保에 대해서 처음 立場을 표명한 것은 1992년 5월 「아시아·太平洋 地域 軍縮과 安全保障에 관한 UN심포지엄」에서 중국 외교부장인 錢其琛이 행한 발언으로, 그는 “주권과 영토보전의 상호존중, 상호 불가침, 상호 내정불간섭, 호혜평등, 평화공존 등의 ‘平和共存 5개 原則’을 존중하며, 이웃 나라와 善隣友好關係를 유지하면서 군축의 책임과 의무를 이행하고, 공동번영과 발전을 위해 아시아·태평양 諸國이 경제교류와 협력을 강화하자”고 하면서 APEC 등의 機構를 새로운 수준으로 만들자고 제안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중국은 1993년 5월 錢其琛 외교부장의 서울 및 동경 방문시 ASEAN 주도의 다자간 대화에 대한 공식적 지지입장을 표명하였고, 또한 東北亞의 韓·中·日간 경제공동체에 대하여 찬성하며, 장기적인 眼目에서는 북한도 참여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러한 錢其琛 외교부장의 주장은 주변정세의 안정을 위하여 지역 다자간 안보협의를 통하여 지역의 不安 要因을 제거해야 한다는 當爲性에 동감하면서도, 이러한 협의체의 구성이 중국이나 북한 등의 특정한 국가에 대한 견제를 목적으로 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多者間 安保協力과 관련하여 錢其琛 외교부장은 1993년 5-6월 서울과 東京 방문시 또다시 ASEAN 주도의 다자간 대화를 지지한다는 공식입장을 천명하고, 지역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중·일간 安保對話 開催에 합의한 바 있다.  다만 중국은 多者間 安保協力體가 특정국을 대상으로 해서는 안되며, ‘平和共存 5개 原則’을 기초로 해야 한다는 점을 재차 강조하였다.  또한 중국은 클린턴 대통령이 제의한 「ASEAN 地域포럼」 창설 제안에도 支持의 입장을 보였으며, 1993년 7월과 10월에 샌디에고에서 열린 「ASEAN 安保 포럼」과 11월의 「APEC 非公式 頂上會談」에도 참석하는 등 多者間 安保協力에 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중국이 제시하고 있는 평화공존 5원칙을 중심으로 지역내 다자간 안보협력체 형성에 대한 원칙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국가간 관계에서 패권주의, 약소국에 대한 강대국의 강압정치, 貧國에 대한 富國의 覇權行爲를 반대한다.  모든 아·태지역 국가들은 패권을 추구하지 않아야 하며, 외국에 군사기지를 설치하거나 군대를 주둔시키지 않아야 하며, 동시에 타국을 상대로 하는 軍事集團이나 政治聯合에 가입하지 않아야 한다.
둘째, 國際紛爭과 각종 역사적 문제 및 향후 발생할 문제들을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영토문제와 국경문제 등 일시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몇 가지 문제에 대해서는 조건이 성숙될 때까지 기다리면서 협상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紛爭解決 이전 관련국들은 안전과 信賴措置를 통해 정상적인 국가관계를 유지하고 경제협력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셋째, 아·태지역국가들은 軍備를 正當防衛에 필요한 수준으로 유지해야하며, 미국과 러시아는 핵무기와 재래식 무기를 減縮하면서 이를 아·태지역에 이전하지 말아야 한다.  아울러 미국과 러시아는 아·태지역의 방대한 海軍力을 감축해야 한다.
넷째, 모든 核武器 보유국들은 핵무기 先制 不使用과 비핵국가와 비핵지대에 대한 핵무기 사용과 核威脅을 하지 않아야 한다.
다섯째, 지역국들은 經濟協力을 강화하고 과학기술교류와 협력을 촉진하며 지역 경제조직 형성을 지지하고, 개발국은 未開發國을 지원해야 한다.
이와 같은 사실들을 종합해 볼 때, 중국은 아·태지역뿐만 아니라 東北亞 地域安保協力體 창설에 대하여도 과거의 부정적 입장에서 점차 긍정적 입장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1993년 5월 27일 錢其琛 中國 외교부장과 韓昇洲 외무장관과의 兩國 외무장관회담에서 亞·太地域의 안정을 위해 다자간 안보대화가 필요하다는데 인식을 같이 한 것 등은 중국이 지역내 다자간 안보협력기구 창설문제에 대하여 긍정적인 태도를 보인 것으로 간주된다.  이는 중국이 4대 강국의 利害關係가 교차되고 있는 동북아 秩序의 安定을 절실히 요구하고 있다는 점과 동북아에서 일본의 군사역할 증대를 牽制하고, 북한 핵문제를 대화로 해결함으로써 이 문제로 인한 중국의 난처한 입장을 탈피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또한 주변국과 善隣關係를 강화하고자 하는 중국은 자신이 동북아에 대해 安保威脅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주변국의 우려를 불식시키고자 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북아지역은 南中國海 지역과 같은 현안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도 중국은 동북아지역에서 다자안보협력이 이루어지더라도 중국의 장기적인 利益을 沮害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요컨대, 周邊情勢의 安定을 바라는 중국은 지역 다자안보협력을 통해 지역불안요인을 제거하고 지역내 安定과 平和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데 적극 동감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한국의 입장에서 볼 때, 이러한 중국의 입장변화는 중국이 多者間 安保協力 論議와 관련하여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는 북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갖게 한다.

4. 러시아의 位相變化와 多者安保

러시아는 한반도에 인접한 국가로 地理的으로 한반도와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는 국가이다.  그러나 러시아는 舊蘇聯의 붕괴로 개혁과 개방을 통해서 새로운 국가건설과 經濟改革 등 국내문제 해결에 주력하면서 지역내 기존의 影響力 減少를 최소화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한국과의 국교정상화는 경제협력뿐만 아니라 한반도에서의 상황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事前布石으로도 간주할 수 있다.  따라서 러시아는 국내문제의 早期 定着과 더불어 대외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중국과 국경문제를 해결하고 미국, 일본, 한국과의 경제협력을 통하여 국가 경제력 건설에 주력하면서, 한편으로는 한반도와 주변의 不凍航路에 대한 관심은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로서는 현재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에 직접적으로 개입할 能力과 與件이 되지 못하고 있지만, 한반도 주변의 그 어느 국가보다도 이 지역에서의 다자간 협력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있는 국가이다.  多者間 安保協力과 관련하여 러시아는 舊蘇聯 이래로 지역내 국가 중에서 가장 많은 제안을 해왔다.  지역안보협력기구 창설에 대한 정책은 아시아에 대한 러시아의 지속적이고도 傳統的 接近方法이었으며, 이에 대한 提案은 특히 고르바초프의 시대에 들어서면서 더욱 적극성을 띠고 추진되어 왔다.
러시아가 아시아 태평양지역에서의 集團安保政策을 처음으로 제시한 것은 1969년 구소련의 브레즈네프에 의해서이다.  그가 제시한 아시아 集團安保會議(Asian Collective Security Conference)는 군사적 手段에 의하여 중국을 봉쇄하고 미국의 동맹국들에 의한 蘇聯 包圍를 저지함으로써 아시아에서 소련의 軍事的, 政治的 地位를 강화시키는데 주목적이 있었다.  따라서 이와 같은 提案에 대하여 중·소분쟁에 휘말리기를 꺼려하는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들이 무관심한 반응을 보인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고 볼 수 있다.
고르바초프의 등장은 소련의 대아시아 정책을 근본적으로 전환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1985년 5월 고르바초프는 ‘全아시아포럼’을 제안하면서 브레즈네프의 아시아 집단안보체제와는 달리 중국과 미국을 포함시켰다.  舊蘇聯의 多者間 地域安保協力會議 창설 제안은 고르바초프가 서기장에 취임한 1985년 5월 「全아시아회의」 개최를 주창한 이래 1986년 7월 28일 「블라디보스톡선언」을 계기로 유럽安保協力會議(CSCE) 방식으로 추진되어 왔다.  고르바초프는 「블라디보스톡선언」에서 蘇聯을 亞·太國家로 선언하고 모든 亞·太國家들과의 쌍무관계는 물론 中·蘇관계 개선과 ASEAN 국가들과의 관계확대를 강조하면서, 아시아版 헬싱키회담 또는 유럽안보협력회의(CSCE)와 유사한 ‘태평양회의’를 提案하였으며, 1988년 9월 6일 크라스노야르스크에서 행한 연설에서 한국과의 경제관계 개선 가능성에 대한 언급을 비롯하여 蘇聯의 새로운 亞·太정책을 보다 구체화시키는 이른바 「亞·太平和 7개항」을 제시하였다.  이는 1986년 7월 29일 「블라디보스톡 선언」에서 천명한 고르바초프의 對아시아 외교정책에 이은 蘇聯의 亞·太地域 진출을 위한 장기적인 포석의 일환으로 볼 수 있으며, 亞·太地域에서 蘇聯이 의도하는 정치, 경제적 목표의 추구를 위해서는 긴장완화와 군비축소를 통한 군사적 안정이 필수적이라는 인식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고르바초프의 新亞·太政策은 우선 중국과 미국을 상대로 전개되었다.  중국과의 관계정상화를 위해 소위 ‘3대 장애물’ 제거에 합의하였고, 1989년 5월 北京을 방문한 그는 30년간의 中蘇紛爭을 종결하고 향후 10년간의 ‘經濟科學協力協定’을 체결하였다.  그는 北京演說을 통해 多者間 안보협의 기구인 ‘全아시아 協議過程’(All-Asian Process)을 제의하면서 UN의 협조와 支持 하에 아시아의 모든 有關國家들이 노력하여 아시아 문제를 해결해야 할 시점에 있다고 주장하고, 미국과 소련의 참여 없이는 평화와 협력이 곤란함을 力說하였다.  이러한 北京演說의 특징은 집단안보협력체제의 필요성과 함께 그에 이르는 ‘全아시아 協議過程’을 제기하였다는 점이다.  ‘全아시아 協議過程’은 그 동안 세계의 냉전 주도국이었던 미국과 소련이 참여한 아·태지역의 집단안보체제를 구축함으로써만이 평화와 협력이 가능하며, 평화구축 과정에서도 美·蘇 兩國이 배제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1990년 9월 10일 세바르드나제 외무장관은 「블라디보스톡 연설」을 통해 ‘汎아시아포럼’(Pan-Asian Forum)을 제안하면서 아시아에서도 새로운 탈냉전시대를 개척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汎아시아포럼」은 安保問題뿐만 아니라 경제협력, 환경보호, 과학기술 등 다양한 의제를 포괄하고 있으며, 이 지역에 이해관계를 맺고 있는 미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들의 참여를 전제한 것이었다.  따라서 對美牽制의 의도보다는 지역내 국가들의 共同關心事를 함께 논의함에 있어 소련 자신과 미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들을 集團安保協力體制에 참여시킬 목적으로 시도되었던 것이다.
고르바초프의 이러한 亞·太地域 安保協力 증진정책은 러시아로 계승되었으며, 1992년 11월 옐친은 한국 방문시 국회연설에서 亞·太地域의 안보문제를 다룰 다자간 안보협력체 구성과 이를 위해 동북아지역에서 먼저 廣域 또는 小地域的 安保協議體를 구성하자고 제의했다.  이와 함께 航海自由 확보를 위한 「國際 海洋紛爭 防止센터」, 방위예산과 군사교리 및 부대전개 등의 문제를 언급하기 위한 「戰略硏究센터」 등의 설치를 제안했으며, 그 의제로서 전략무기 및 해군력의 감축, 영토분쟁과 북한 核問題 해결 등의 당면문제를 제시한 것 등을 고려해 볼 때, 옐친의 러시아 연방공화국이 多者間 安保協力에 관하여 적극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러시아는 미국과의 군축협상을 통해 戰略核의 減縮과 戰區核 및 戰術核의 폐기, 전개, 철수를 합의하였기 때문에 영국, 프랑스 및 중국도 核武器 廢棄 또는 감축에 동참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데, 이와 같은 러시아의 주장은 다자간 안보협력기구를 통해 중국의 核武器 감축을 유도해 보려는 의도를 나타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러시아가 동북아를 포함한 亞·太地域 安保問題에 대해 아시아 헬싱키型 安保協力 방식의 접근을 시도하고 있는 것은 國力衰退에 따른 국제적 지위 약화가 불가피한 현실에서, 이 지역에서 일본과 중국의 군비증강에 따른 牽制로서 정치적 영향력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代案이 현재로서는 多者間 安保協力體 창설을 통한 방법밖에 없다는 인식과 다자간 안보협력의 참여를 통해 이 지역에서 러시아를 배제하는 安保協力體制가 형성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또한 러시아는 지역내 안보협력체제를 통하여 핵을 비롯한 대량 살상무기의 지역내 확산 방지와 동북아로부터의 威脅減少로 자국의 영향력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地域安保協力에 적극성을 보이는 또 다른 이유는 내적으로 低生産性, 非能率性으로 시달리는 국내 經濟의 活性化 摸索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러시아는 주요 군사대국들과 경제강국들의 이해가 교차되고 있는 동북아지역을 가장 중요한 經濟 戰略地域으로 간주하고 있는 바, 동북아지역은 경제관계에서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표방한 중국의 개혁·개방정책, 한국의 성공적인 북방정책, 최근 일본의 亞·太 경제통합 가능성 모색 등 兩者間 및 多者間 協力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러시아 연방이 지역내 국가들과 경제협력 관계를 확대하고 地域 經濟共同體에 편입되는데 유리한 여건들이 마련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따라서 러시아는 冷戰 이후 동북아지역에서의 국제정세가 정치, 경제, 및 전략적 諸般 관계가 相互依存的으로 변화되어 가고 있으며, 지역국가들과 善隣관계를 유지하고 지역내 협력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조건들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조성되고 있다는 인식에서 多者間 安保協力 문제에 대하여 적극적인 입장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상에서 살펴본 東北亞 지역안보를 위한 多者安保協力機構 창설에 대한 한반도 주변국들의 입장을 정리해 보면 <표 5-1>과 같다.

 

제4절  東北亞 多者安保協力의 必要性


동북아지역에서 多者間安保協力體 設立에 대한 지역내 국가들의 입장은 각 국가들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새로운 安保環境變化에 적응할 安保協力體制 구성의 필요성이 있다고 공감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볼 때, 각 국가의 地域安保協力에 대한 필요성 인식의 확대와 함께 多者安保協力體 실현 가능성은 앞으로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1. 多者安保協力의 必要性

다자간 안보협력의 이론적 근거는 現實主義 입장에서 본 협력안보에 두고 있다고 하였다.  현실주의자들이 주장하는 勢力均衡의 급격한 破棄를 피하기 위하여 기존의 兩者間 안보관계를 유지하는 바탕 위에서 동북아지역의 새로운 안보도전에 대처하기 위하여, 다자간 안보대화로서 對話의 習慣이 축적되어 있지 않은 동북아 국가간 共同 關心事項에 대하여 협의하고 상호간 관계의 透明性을 높임으로써 궁극적으로 공동안보 의식을 공유토록 한다는 데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현실주의적 접근이나 집단안보 적용보다는 다자간 安保協力 또는 對話體制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다.
첫째로 지역내 정치적, 안보적 不安定性 증대에 대한 대책의 일환으로 多者安保協力이 필요하다.  냉전종식 이후 동북아지역에서 러시아의 지역 영향력 減退와 함께 미국의 상대적 役割減少로 인하여 이 지역에서의 힘의 空白 현상을 초래할 것이라는 지역국가들의 認識이 고조되고 있다.  이와 함께 중국의 해·공군력 증강 및 일본의 방위예산 증가 등 지역 軍備競爭趨勢와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핵확산금지조약 탈퇴는 지역 불안정 및 안보 불확실성을 증대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러한 동북아의 현상은 일·중간의 잠재적 覇權競爭을 심화시키고 民族主義를 바탕으로 한 지역국가들의 ‘國家別 戰略’ 강화현상을 초래하여 19세기말과 같은 勢力競爭의 場으로 변화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背景에서 동북아의 변화된 안보환경에 부응, 軍備競爭을 바탕으로 한 세력경쟁 등 지역전체의 안보 불안정 요인을 제거하고 새로운 平和秩序 構築에 기여할 수 있는 多者間 安保協力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둘째로 脫冷戰期의 다양한 안보개념에 對應할 수 있는 적절한 안보협력체제가 필요하다.  최근 안보개념은 지역국가간 相互依存관계의 深化 및 경제문제가 중심이 되는 이른바 下位政治(low politics)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추세와 관련하여, 과거의 군사 및 전략문제위주의 협의의 개념에서 정치, 외교, 군사, 경제, 환경 등 다차원적인 ‘包括的 安保’ (comprehensive security)로 전환되고 있다.  특히 테러방지, 마약거래, 大量殺傷武器의 擴散 등 범세계적인 문제가 동북아지역에서도 이러한 包括的 安保槪念의 영역으로 부각되고 있다.  그러나 包括的 安保槪念의 領域에 포함되는 이 문제는 국경을 초월하여 발생하는 屬性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한 국가의 일방적 행동에 의해서 해결될 수 있다기보다는 여러 국가의 協力을 필요로 하고 있다.  또한 국가간의 貿易葛藤, 영토문제, 군비경쟁, 인권문제 및 대량살상무기의 통제 등 냉전시대 이후의 동북아정세는 상당한 정도의 不確實性과 不安定 要因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정책결정자들간에 중요한 관심사항이 되어 왔다.  이러한 문제에 대처하기에는 군사개념 위주의 兩者間 同盟關係를 바탕으로 한 기존의 安保裝置만으로는 적합하지 못하며, 따라서 ‘包括的 安保問題’를 논의할 다자간 안보협력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셋째로 새로운 동북아질서 구축을 위한 對話經驗과 窓口를 위하여 이 지역에서의 多者安保協力이 필요하다.  동북아지역에서는 유럽의 다자간협력과 같은 對話 및 協力의 經驗이 없으므로 냉전 이후의 다양화된 지역문제를 함께 논의할 수 있는 대화의 경험축적이나 이를 위한 對話의 窓口가 필요한 것이다.  雙務體制에 익숙해진 동북아지역은 동맹간의 눈치보기, 기존체제로 인한 旣得權에 대한 損傷 憂慮, 실현가능성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이 지역 안보협력에 대한 실천을 前提로 한 具體的 代案이나 협상이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또한 냉전종식 이후 유럽에서의 다자간 안보협력체제가 지역안정에 공헌하고 있는 바와 같이, 동북아 국가간의 安保對話體制 構築은 기존의 兩者關係의 유지와 병행하여 지역내 새로운 平和秩序 구축을 향한 중요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동북아지역에도 구소련의 崩壞와 냉전종식이라는 다른 안보환경이 조성되었는데, 지역국가들이 이를 受動的으로 傍觀하고 있는 것보다는 유럽에서와 같이 안보협력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地域平和維持와 安定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넷째로 동북아에서의 多者間 安保協力은 지역관련국에게 利點과 有用性을 제공한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미국의 경우 동북아 다자간 안보협력으로 기존의 한·미, 미·일 동맹관계를 해치지 않는 한 이 협력을 통하여 지역문제를 제도 속에서 參與와 介入을 할 수 있는 명분이 생긴다.  또한 한반도의 경우도 남·북한간에 이미 체결된 기본조약 등 兩者協定은 다자협력의 틀 안에서 보장 및 강화해갈 수 있으며, 남북 당사자간에 해결이 어려운 課題는 다자간 대화의 틀을 통해 합의가 촉진될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다자안보협력을 통한 동북아의 새질서 구축은 한반도의 平和體制 수립 및 통일에도 긍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섯째로 동북아에서 한반도 주변국간의 多者安保協力은 이 지역국가들이 이룩한 經濟成長과 발전을 지속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政治的 安定의 維持 필요성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동북아를 비롯한 아시아 태평양지역은 세계에서 가장 力動的으로 경제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巨大한 市場規模로 21세기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지역으로 평가되고 있다.  1990년대 말부터 아시아지역에서 다소 경제의 沈滯現狀을 초래하고 있지만, 21세기에는 이 지역에서 계속적인 경제성장과 이에 따른 지역내 및 타지역 국가들과의 交流增大를 위하여 지역적 차원의 정치적 安定 確保를 위한 다자간 안보대화 및 협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여섯째로 한국으로서는 가장 중요한 사항으로 한반도에서 駐韓美軍이 철수할 경우에 대비하여 한국의 主權과 生存權 保存次元에서 주변국간의 다자안보협력이 반드시 필요하게 된다.  한반도 통일로 북한의 위협이 없어지거나, 또는 미국의 일방적 정책에 따라 주한미군이 한반도에서 철수할 경우, 한반도에는 힘의 공백이 발생할 우려가 있으며 주변국들의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 행사를 위한 覇權다툼을 예방하기 위해서도 이들 주변국들간의 다자안보협력이 필요하게 된다.  또한 한국으로서도 현재 보유하고 있는 남북한 군사력으로는 핵을 가진 주변 강대국들과 대응하여 國益을 지키고 主權確保와 生存權을 保障하는 차원에서 한반도 주변국간의 다자안보협력이 반드시 필요하게 된다. 
동북아지역에서의 多者安保協力 및 對話體制構築에 대하여 그 필요성의 부각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에 대한 否定的 視角과 反論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따라서 이 지역 안보협력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肯定的 要素들과 否定的 要素들을 검토해 보고자 한다. 

2. 多者安保協力의 可能性

1) 肯定的 要素

동북아지역에서 지역안보협력의 실현가능성을 促進해 주는 肯定的 要素들은 다음과 같은 것을 들 수 있다.
첫째, 지역내 關聯國家들이 지역안보협력에 대한 共感帶가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1992年 이전까지만 해도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해 오던 미국은 냉전시대와 같은 財政的 負擔을 안고 군사력의 前進配置戰略을 고수할 수 없다고 인식하게 되었다.  동북아지역내의 勢力空白을 미국이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하여 「東北亞協力對話」와 같은 다자간 안보협력을 추진하고 있으며, 일본과 중국도 지역안보협력체 구성에 긍정적 입장으로 轉換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둘째, 지역내 국가들은 兩者間 안보협력의 한계를 인식하고 다자간 안보협력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일·러 및 남·북한 등 양자간 긴장대립 관계는 다자간 협력의 틀 속에서 稀釋될 수 있다고 보는 견해가 확산되고 있으며, 또한 한·미, 미·일 및 한·일 등 兩者關係는 주변국들의 우려와 경계를 야기할 가능성이 있어 이를 보완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셋째, 미국과 일본이 다자안보협력에 적극적인 자세를 나타내기 시작했고, 중국, 러시아 등 舊共産圈 국가들도 아시아지역에서 主導權 획득에서 疏外되지 않으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이는 기본적으로 동남아지역에서의 다자간 협력에서 잘 나타나고 있으며, 동북아에서의 다자협력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前提로 한다. 
넷째, 단기적으로 보아 인권이나 민주주의 등 內政問題와 國家分斷이나 영토문제 등 타협이 어려운 懸案問題들은 1차적으로 관계 당사국들 문제로 양해됨으로서 지역 共同關心事에 논의를 한정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다섯째, 지역내 다자안보협력체를 특정한 廣域次元이나 小域次元에 한정시키지 않고, 多元的이고 복수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共感帶가 형성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일본, 중국 등이 확대된 ASEAN판 다자안보협력체를 지지하고 있다는 사고에 便乘하여, 한국은 한반도 주변국들간의 다자협력이라는 小地域主義를 병행해서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이는 곧 가능한 것부터 시작하면서 어려운 것도 배제하지 않으려는 包括的 입장이 양해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안보대화에는 과거의 敵對國間이나 현재 對峙關係에 있는 나라들도 한 자리에 모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는 쉬운 것부터 시작하여 점진적으로 어려운 문제에 접근하자는 합의가 黙示的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여섯째, 相互安保와 이를 성취하는 방법으로서 協力安保의 개념이 이 지역에서도 보편적으로 수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종래의 軍事爲主의 안보개념이 包括的 안보개념으로 확대되고 있는 현실을 인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동북아에서의 안보협력의 제도화는 공동 生存과 安全을 위한 協力安保 또는 共同安保를 위한 것이다. 
일곱째, 북한의 核問題가 야기한 지역 불안정에 대한 우려는 한반도 문제나 이와 유사한 문제의 발생을 방지할 수 있는 多者間協力의 필요성을 촉진시키고 있으며, 기타 地域紛爭 요인들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는 制度的 裝置의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지역내 문화의 多樣性과 異質性, 공동이익의 결여, 전통적 不信, 안보협력의 前例 不足, 대화경험의 부족 등 지역 내의 多者間 安保協力機構의 창설에 부정적 見解와 懷疑를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상에서 서술한 긍정적 요소들이 다음과 같은 부정적인 요소들을 극복하고 지역안정과 평화를 달성하기 위해서 多者安保協力의 필요성에 대한 共感帶를 점차 확대시켜 나갈 수 있다고 본다. 

2) 否定的 要素

동북아에 있어서는 多者安保協力이 필요하고도 바람직하지만 다자안보협력이 대화수준을 넘어 실질적인 안보협력을 논의할 수 있도록 발전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많은 障碍要因들이 있으며, 이러한 問題點들에 대한 극복여부가 동북아 다자간 안보협력 실현 가능성의 成敗를 左右하는 열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否定的 要素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을 수 있다. 
첫째, 기초적 信賴 缺如 및 지역내 국가간의 修交狀態 不在는 다자간 협상의 가장 근본적인 어려움으로 남아 있다.  다자간 안보협력을 추진함에 있어서 그 下部構造를 구성하고 있는 지역내 일부 국가들간의 雙務關係가 여전히 취약하다는 약점이 있다.  특히 북한의 對美 및 對日 관계가 核問題 등으로 관계개선의 가능성이 유동적이며, 무엇보다도 북한의 폐쇄적인 속성은 북한 정치체제에 대한 관련국가들의 의심을 拂拭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기본적 신뢰의 부족은 다자간 안보협력체 구성을 북한에 대한 牽制機能 위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결국 북한의 참여를 어렵게 만들 우려가 있다. 
둘째, 동북아 국가들간의 同質的 價値의 결여는 정치적인 신뢰구축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역사적 反目과 利害의 相衝은 다자간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원인을 제공하는 동시에 이의 성공여부를 불투명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要因이 되고 있는 것이다.  오랜 民族感情에 연루된 한·일 또는 중·일간의 문제점들은 안보협력에 부정적인 요인들로 작용할 수 있다.  또한 현재 첨예하게 대립되어 있는 일본과 러시아간의 北方島嶼問題 등은 다자간안보협력기구가 구성된다고 해도 의제로 채택되기 어려운 事案들이며, 또한 중국이나 북한의 경우 인권문제나 국내정치발전에 관련된 문제가 連繫될 때 이에 대한 명백한 反對意志를 表明할 것이다.  특히 미국과 중국간의 最惠國待遇 연장을 놓고 葛藤關係를 노출시켜 온 경험을 상기할 때 현재로서는 매우 제한적인 협력 이상을 기대하기 어렵다. 
셋째, 그 동안 지역 내에 국가간의 葛藤과 紛爭을 조정할 수 있는 공동의 論議 機構나 통일된 안보기구가 없었기 때문에 새로운 협력기구의 實效性이 의문시된다는 점이다.  지역내 국가들간의 異質性과 利害의 多樣性으로 인한 信賴의 부족, 그리고 그간의 냉전적 對決 때문에 다자간의 협상이나 협의 과정이 全無했었다. 
넷째, 미·일, 한·미간에 성립되어 있는 雙務 安保協力關係를 손상시킬 가능성과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사실상 그 동안 미국이나 일본이 소극적인 입장을 취했던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며, 한국이 남북한 관계개선을 위한 국제여건 조성 외에 실질적인 安保協力에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던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다섯째, 多者間 對話로서는 해결하기 어렵고, 또한 각 국가들은 당사국 차원에서 해결하기를 원하는 문제들이 많다는 점이다.  남북한 문제, 중국과 대만간의 문제, 일본과 러시아간의 영토문제, 중국의 人權과 民主主義 문제, 북한의 人權과 開放 問題 등이 그러한 경우에 속한다. 
여섯째, 다자간 안보협력이 초기에는 대화수준에 머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신뢰구축이나 예방외교적 효과 외에 危機時 이에 공동으로 대처하거나 共同制裁 방법에 합의하기는 어렵고, 集團的 强制力을 행사할 수 있는 實效性 있는 制度化로의 발전이 어려울 것이라는 점이다. 
일곱째, 多者安保對話 通路가 중국이나 특히 북한의 政治 宣傳場化될 가능성도 없지 않으며, 북한이 이 다자간 협력을 개방압력으로 간주할 수도 있고, 또 核武器 問題 등으로 인해 계속 불참하고 비난을 일삼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전체적으로 보아서 이러한 부정적 요소들은 東北亞地域에서의 多者間 安保協力機構의 창설을 어렵게 만들고 지연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부정적 요인들은 동북아 각 국가들 스스로가 이미 그 문제점들에 관하여 잘 인식하고 있으며, 多者間 安保協力體가 일단 개설이 되고 나면 점진적인 해결이 가능할 것이다. 
현재 지역내 모든 국가들은 自國의 利益과 繁榮 追求라는 관점에서 경제발전을 촉진시킬 안정된 국제적 환경을 필요로 하고 있으며, 경제적 協力이 증진됨에 따라 정치적 협의와 안보에 관한 對話의 土臺가 마련되고, 강대국들간의 관계개선과 相互依存性의 增大에 따라 어느 한 국가가 정세를 左之右之하기는 어려운 상황으로 발전되면, 그 어느 때보다도 相互協力의 필요성이 증대되는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이 지역에서 이러한 부정적 요소들이 多者間 安保協力의 실현에 있어서 근본적으로 부정적으로만 작용하지는 않을 것이며, 오히려 동북아 관련국들의 東北亞地域 多者間 安保協力機構의 창설 필요성에 대한 인식과 더불어 이러한 지역내 상황에 비추어 볼 때 그 실현가능성은 점차 높아지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단지 이러한 부정적 요소들과 각 국가들의 입장 차이로 인해서 多者安保協力이 초기에는 對話 통로로 한정될 수밖에 없을 것이며, 이 협력이 그 본래의 목적을 정상적으로 이행할 수 있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이전글] : (博士學位論文)韓半島와 東北亞 多者安保協力機構에 관한 硏究-第 4 章 東北亞 安保環境과 兩者 安保關係의 變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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